최근 AI로 제작된 광고 영상이 범람하고 허위·과장 정보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AI 생성물 표시제’ 도입을 예고했다. 모든 AI 제작 콘텐트에 식별 표식을 의무화하여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다. 상품 개발과 시장조사, 브랜드 로고와 광고 제작까지 마케팅 분야에서 AI 사용으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고객 접점에서 일어나는 부작용과 저항도 무시할 수 없다. 기업이 민감하게 감지해야 하는 것은 법적 규제를 넘어 소비자들의 싸늘한 시선이다.
진짜 같아 생기는 ‘AI 신뢰 역설’
브랜드의 철학과 서사 지키는 건
대체 못하는 인간의 통찰력·경험
지난 연말엔 글로벌 기업이 공개한 AI 생성 광고에 비난이 쏟아졌다. 맥도날드는 네덜란드에서 ‘일 년 중 가장 끔찍한 시기(The Most Terrible Time of the Year)’란 제목의 광고를 내보냈다. 산타가 교통 체증에 갇히는 등 크리스마스에 있을 법한 사고와 혼란을 보여주며 맥도날드로 피신하라는 유머러스한 내용이었는데, “기괴하다” “섬뜩하다”는 혹평에 결국 중단됐다. 코카콜라는 202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붉은 트럭이 줄지어 이동하는 AI 광고를 제작했다. 인물의 움직임이 어색하다는 평가를 의식해 이번에는 동물을 등장시켰지만, 이미지 오류를 지적당하거나 어린 시절 추억이 훼손됐다는 반응을 얻었다.
실수를 자산으로 활용한 일론 머스크 AI 생성 콘텐트는 쓰레기를 뜻하는 ‘슬롭(slop)’으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기업의 활용은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코카콜라의 글로벌 부사장 이슬람 엘데수키는 이번 AI 광고가 정량적 조사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강조한다. 일부 고객의 부정적 피드백을 인식해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TV 광고를 병행하는 균형 전략을 취하고 있지만,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에 발맞추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다. 105개 국가의 글로벌 기업을 조사한 맥킨지 보고서에서도 마케팅은 IT·지식관리 다음으로 AI 도구를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는 분야이며 앞으로 더 큰 잠재력을 발휘할 것으로 분석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은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표현의 한계를 빠르게 극복해주지만, 한편으로는 완벽함이 주는 불편함이란 모순을 낳는다. 기존에는 어설픈 기술을 신뢰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실제와 구별할 수 없어서 무엇이 진짜인지 혼란스러워 의심하게 되는 ‘AI 신뢰 역설(AI Trust Paradox)’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정교하고 잘 만든 콘텐트가 오히려 진정성을 해치는 부작용을 낳는 셈이다. 지난해 패션 브랜드 게스가 보그에 게재한 AI 모델 광고는 ‘인간의 자리를 뺏은 가짜’ ‘다양성을 무시한 기계적 광고’란 비난과 함께 마케팅 전문지 애드 에이지(Ad Age)의 2025년 최악의 광고로 뽑혔다.
완전함의 모순은 기술 혁신이 낳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완벽하기보다 빈틈을 보이는 사람이 선호된다는 프랫폴 효과(Pratfall Effect)가 검증된 바 있다. 2019년 사이버트럭 시제품 공개 행사에서 방탄유리 충격 시연 중 창문을 깨뜨리는 실수를 했던 일론 머스크는 오히려 인간적이란 호응을 얻었다. 금 간 유리를 티셔츠로 만들고 테슬라 다이너에 전시하는 등 실수를 자산으로 활용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완벽한 외모의 AI 모델보다 실재 인물의 주름진 얼굴을 선호하는 것도 불완전함에 공감하는 심리의 연장이다.
도브, 광고에 가상모델 안 쓴다고 공언
기술 혁신에 대한 불안감·반감을 느끼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안티 AI’ 전략을 택한 브랜드도 눈에 띈다. 20년 전부터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의미의 ‘리얼 뷰티(Real Beauty)’ 캠페인을 펼쳐 온 도브는 AI를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로 정의하고 광고에서 가상 모델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 바탕에는 AI 생성 모델이 가짜인지 알면서도 자신과 비교하며 자신감을 잃는 여성 소비자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제품 개발과 고객 서비스에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뷰티 테크를 선도하는 로레알도 인물 이미지 생성에는 AI 사용을 금지한다는 원칙을 적용한다. 속옷 브랜드 애어리(Aerie)는 ‘보정 없음(No retouching), AI 없음(No AI)’ 광고로 큰 호응을 얻었다.
아날로그 현실, 인간적 경험을 강조한 마케팅은 다양한 분야로 확장 중이다. 하이네켄은 대화가 가능한 목걸이형 AI 프렌드(Friend)를 겨냥해 ‘친구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맥주 한잔’이라는 빌보드 광고를 제작했다. 아날로그 카메라를 상징하는 브랜드 폴라로이드도 2025년 글로벌 마케팅 슬로건으로 ‘AI는 당신의 발가락 사이 모래알까지 만들어낼 수는 없다’를 내세워 진짜 세상을 체험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미국 유통업체 트레이더조는 키오스크 설치와 온라인 배송, 고객 데이터 추적을 제한하고 매장 큐레이션과 직원 서비스 역량을 강화하며 오프라인 경험 가치를 극대화한다.
스토리텔링 진정성이 브랜드 핵심 역량 AI 기술 덕에 시각적인 완벽함을 구현하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지만, 그로 인한 차별화의 의미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기술 채택 여부를 넘어 마케팅 활동의 진정성이 중요해지고,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브랜드 서사의 힘은 더욱 커진다. 코카콜라가 혹평에도 AI 광고를 고수할 수 있는 것은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빨간 트럭의 추억과 설렘을 공유하는 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도브가 확고한 태도로 안티 AI 전략을 펼치는 것도 오랜 기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축적해온 브랜드 서사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은 브랜드에 영혼을 불어넣을 스토리텔러를 찾는 기업이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AI는 단 몇 초 만에 수많은 카피와 이미지를 쏟아내지만, 브랜드 철학과 서사를 만들고 지키는 것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통찰력과 경험에서 나온다. 무엇이 진짜인지 혼란스러운 AI 시대에는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이 기업과 브랜드의 생명력을 강화하는 핵심 역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