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지는 길을 가고 있다는 걱정이 든다. 폴란드에 이어 이번엔 캐나다다. 지난해 말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으로 구성된 코리아 원팀은 폴란드의 신형 잠수함 도입 사업인 ‘오르카 프로젝트’ 최종 사업자 선정에서 스웨덴 샤브에 밀려 탈락했다. 한국의 유럽 방산 수출의 교두보인 폴란드. 퇴역을 앞둔 해군 잠수함 장보고함 무상 양도까지 제안하면서 공을 들였지만 고배를 마셨다.
폴란드에 이어 수주 실패 우려감
핵심은 국가 간 경제협력 패키지
K방산 도약 위해 대통령 나서야
스웨덴을 선택한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폴란드 국방부 장관은 발트해 작전 역량을 강조했다. 폴란드 앞바다인 발트해는 평균 수심이 50~100m 정도다. 폴란드 해군은 숙적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이 얕은 바다를 종횡무진 누비고 싶었을 터다. 그런데 한국은 디젤 잠수함으로는 최대 규모인 3600t급을 제안했다. 아반테를 희망하는 고객에게 풀옵션 제네시스를 사라고 한 격이다. 사브는 2000t급을 제안했다.
저간의 사정이 이러했는데, 지난해 9월 뉴욕에서 폴란드 대통령을 만난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산 무기는 품질도, 가성비도 좋고 납품 일정을 어기지 않는다”고 했다. K방산 수출 4대 강국을 국정 과제로 내건 이 대통령이 핵심을 놓친 셈이다.
3월 초 캐나다 초계잠수함 프로젝트(CPSP) 제안서 제출을 앞두고 발트해의 얕은 수심을 놓친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질 조짐이 보인다. 최대 12척을 도입할 예정인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는 향후 30년간 유지·보수 비용까지 감안하면 최대 60조원짜리 프로젝트다. 한국의 단일 방산 수출계약으론 사상 최대 규모다. 상대는 ‘U보트의 나라’ 독일의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TKMS). 독일 잠수함은 한국 잠수함의 ‘스승’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직접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를 둘러봤다. 동행했던 김민석 총리는 최근 K방산 포럼에서 “카니 총리는 한화라는 기업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상대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번 수주전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카니 총리 말대로 대형 방산 프로젝트는 단순히 기업이 아니라 G2G(정부 대 정부) 프로젝트다. 실제 캐나다 측은 한국에 자신들이 희망하는 18개 항의 경제협력 패키지를 타진하고 있다. 핵심은 캐나다 국민 자동차 산업 육성. 최근 캐나다 산업부 장관은 독일 폭스바겐이 전기차 배터리공장 설립을 제안한 사실까지 흘리면서 한국 측의 캐나다 현지 자동차 공장 설립 의향을 물었다고 한다. 이뿐이 아니다. 독일은 핵심 광물, LNG(액화천연가스), 수소 협력 등 다양한 절충 교역을 제안했다.
물론 기업의 해외 투자 여부를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다. 트럼프 관세 여파로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고 있는 자동차 업계 입장에선 캐나다 공장 설립은 경영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각종 인센티브 제공과 공동 투자 등 기업 간 협력을 유도하는 묘수를 찾아낼 수 있다. 이번에 독일이 그러하듯, 이미 주요 국가들은 자국 기업과의 내부 조율을 통해 G2G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데 제안서 제출 시한이 채 두 달도 안 남은 상황에서 정부와 관련 기업 간에 이런 긴박한 조율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국가안보실과 정책실 사이의 불협화음설까지 나오고 있다.
대형 원전·방산 프로젝트 수주전은 기본적으로 대통령 프로젝트다. 영광도, 상처도 대통령의 몫이다. 이명박 정부의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이나 윤석열 정부의 체코 원전 프로젝트가 그랬다. 이 대통령은 지난 경주 APEC 정상회의 때 빡빡한 일정에도 카니 총리와 오찬까지 함께 하며 잠수함 세일즈에 나섰다. 최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캐나다를 찾았고, 방산특사인 강훈식 비서실장의 방문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두 번의 정상회담이나 대리인 파견은 대통령이 직접 움직이는 것과는 무게감이 다르다. 그래서 이젠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할 때라는 말이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한국의 첫 원전 수출을 위해 UAE 실세인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왕세제(현 대통령)와 새벽 통화도 마다치 않았다. 명색이 대한민국 대통령인데 여러 차례 일방적으로 통화가 연기돼 자존심이 상했지만 계속 시도했다고 회고했다. 현직 장관이 대거 포함된 대표단을 파견해 경제협력 방안을 브리핑했고, UAE가 숙적 이란의 안보 위협을 우려한다는 정곡을 찔러 파격적인 안보 협력 방안도 제시했다. 프랑스의 집요한 압박 속에 최종 수주 확정을 위해 UAE행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고 보니 당시 UAE 원전 수주액 규모가 이번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와 엇비슷한 약 400억 달러(약 58조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