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같은 당 국회의원들이 만난 자리에서 왜 녹음을 하는가. 적대국 스파이끼리 만났나.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녹취록 내용은 더 황당하다.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좌관이 1억원을 받았다며 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의원님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절절하게 매달리고, 당시 민주당 서울시당 공관위 간사였던 김병기 의원은 “어쩌자고 저한테 그걸 상의하셔가지고 진짜”라며 엮이는 걸 피하려 한다. 김 의원은 “의원님께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발을 빼려 하고, 강 의원은 흐느끼는 듯 “제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라고 한탄한다. 녹취를 들어보면 마치 당시 대화 장면이 눈에 그려지듯 생생하다.
황당한 여당 동료 의원 간 녹취
집권 반년밖에 안 됐는데 잇단 의혹
민주당, 민심에 긴장감 보이지 않아
민주당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지금 집권한 지 7개월밖에 안 지났다. 대통령 취임 후 겨우 반년을 채웠는데 집권 여당에선 벌써 이것저것 난맥상이 노출되고 있다. 이춘석 의원의 차명 주식투자가 튀어나오더니 ‘현지 누나’ 인사 청탁 문자가 등장했다. 급기야 2022년 ‘1억원 대화’ 녹취까지 등장했다.
‘살려주세요’ 녹취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2020년 총선 탄원서 전달 ‘녹음’으로 번졌다. 당시 김병기 의원 측이 공천 대가로 돈을 요구했다는 주장이 담긴 탄원서를 받아서 2023년 이수진 전 민주당 의원이 당 대표실에 전했는데 당시 김현지 보좌관이 “대표에게 전달됐다”고 답했고 이 녹음이 있다는 것이다. 녹취가 녹취로 이어지는 민주당이다.
집권 반년째 여당에서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건 정상이 아니다. 녹취 내용을 보니 정상이 아니고, 의혹이 불거진 뒤 여론을 대하는 자세도 오만하다. 민심을 살피고 긴장해야 하는데 개인 일탈로 간주할 뿐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통일교 로비 의혹이 불거지자 느닷없이 신천지를 특검에 끼워넣자고 요구하고,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으면 민주당이 거리로 뛰쳐나왔을 정통망법 개정안을 고민도 없이 일거에 처리해버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이 민주당에 실망해 반대편을 돌아보니 그곳엔 어이없는 정당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의힘은 힘겹게 생업을 이어가는 국민에겐 가십거리도 되지 않는 ‘당게’로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 새누리당, 국민의힘으로 이어진 당의 역사에서 이런 유치찬란한 자해성 갈등이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그러니 민주당은 민심이 식어도 국민의힘엔 쉽게 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녹취가 수면 위로 튀어나오는 건 그만큼 수면 아래 녹취가 만연해 있음을 시사한다. 녹취는 거시적으로 보면 한국 사회에 이른바 ‘신뢰 자본’이 소진돼 있음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녹취를 뜨는 건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이 달라지니 녹취를 떠서 당시를 사진처럼 굳혀 보험으로 삼으려 한다.
사실 신뢰 자본을 소진시키는 주역은 한국 정치다. 한국 정치를 보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말이 달라지는 데에 관대한지 알 수 있다. 정권이 바뀌니 감사원이 말을 바꾸고, 검찰도 입장을 바꿔 항소를 포기한다. 대선에서 내놨던 말을 180도 바꾸는 건 애교에 속한다. 세금으로 집값 안 잡겠다더니 어느새 지방선거 후 보유세 증세를 선택지 안에 올려놨다.
여당과 정부는 김병기·강선우 의원 녹취 파문에 소극적이다. 국민 신뢰를 높이는 정방향으로 가기보다는 개인 일탈로 간주해 당에서 내보낸 뒤 시간을 끌고 뭉개는 길을 택하려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엄정 신속한 수사보다는 시간 끌기, 논란이 잊힐 즈음 부실 기소, 마지막은 검찰의 항소 포기라는 ‘신면죄부’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그럴 경우 이 나라엔 ‘국가는 힘 있는 이들만 챙긴다. 힘없는 나는 나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는 경험치가 무의식에 깔리게 마련이다. 불신지옥 대한민국인가, 이래저래 녹취를 권하는 사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