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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여의도의 윤석열들

중앙일보

2026.01.07 07:32 2026.01.0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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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윤석열·김건희 부부를 향한 국민의 시선에는 분노만큼이나 당혹감이 섞여 있다. 명색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대통령 부부가 아무런 조심성이나 경계심 없이 넘나들었던 장면은 어이없다. 비상계엄이라는 헌정사적 사건도 충격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더 한심했던 것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금품 수수 논란과 공적 영역의 사유화였다. 흔히 ‘제왕적 권력’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권력 행사에는 제왕의 품위라고는 없었다. 김 여사 의혹을 수사했던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현대판 매관매직’이라고 규정한 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개인 영지로 전락한 의원 지역구
공천권 통해 지방 정치 오염까지
윤·김 부부 권력 사유화의 로컬판
김병기·강선우만의 문제이겠나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본인과 가족을 둘러싼 각종 특혜·갑질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 전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비슷한 장면이 서울 동작구라는 지역 정치 현장에서도 포착됐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 부부를 둘러싼 의혹들이다. 수사와 사법적 판단이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 보더라도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자신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용산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인까지 동원된 금품 수수, 사익을 위한 권력 행사, 보좌관을 향한 갑질, 증거 은폐 시도 등은 ‘윤·김 사태의 로컬판’이라 할 만하다.

김병기 의원은 국정원 출신으로 이재명 대표의 ‘블랙 요원’을 자처해 왔다. 정보기관 출신답게 언론을 통해 드러난 행보는 집요하고 용의주도했다. 부인의 수사 무마를 위해 ‘친윤 실세’라 비판하던 상대 당 의원에게 부탁하고, 살려 달라는 동료 의원의 읍소를 만일을 위해 녹음했다. 식당 CCTV 유출을 막으려 했던 정황은 증거 은폐의 의혹까지 짙게 풍긴다. 생존과 이익 앞에서는 물불 가릴 것 없다는 정치판 생존 본능을 몸소 보여줬다.

비리가 불거진 계기가 보좌진에 대한 갑질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아들의 편입 경로를 알아보라는 지시, 국비로 급여를 받는 보좌진을 개인 이사나 예비군 훈련 연기 업무에 동원했다는 폭로는 충격적이다. 국회의원의 보좌 인력을 개인 ‘집사’로 여긴 셈이다. 지역구가 공적 책임의 공간이 아니라 사적 지배의 영지로 전락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공천권 농단이다. 공천권은 정당 민주주의의 실질이자 핵심이다. 전직 구의원들이 제출한 탄원서에는 김 의원의 배우자에게 2020년 총선을 전후해 현금을 전달한 뒤 돌려받았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탄원서에는 배우자가 “명절 선물이라면 많고, 공천 헌금이라면 작다”는 등 거래를 시도한 정황까지 있다. 배우자가 구의회 법인카드를 건네받아 사적으로 사용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실관계가 명확히 밝혀져야겠지만, 공적 권력이 사적 거래의 수단으로 변질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공천 비리가 동작구뿐이겠나. 당장 강선우 의원과 김경 서울시 의원 간에 공천 대가 1억원 수수 의혹이 불거졌다. 중앙정치가 지방정치 공천을 사실상 좌우하는 마당에 이런 음습한 거래는 구조적이라고 의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수천만원의 현금이 ‘새우깡 쇼핑백’에 담겨 오갔다는 주장이 허무맹랑하게만 들리지 않는다.

이런 사례는 중앙정치에 포획된 지방정치가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말해 준다. 중앙정치와 먹이사슬 관계를 맺고 있는 지방의회가 왜 반복적으로 인허가 비리 등에 연루되는지도 짐작된다. 모든 권력과 자원이 중앙으로만 쏠리는 구조가 결국 지방정치를 중앙 정치인의 사적 도구로 전락시킨다. 한국 정치를 두고 “위를 향한 소용돌이”라고 꿰뚫은 그레고리 헨더슨의 지적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병기·강선우 의혹이 권력 핵심에까지 뻗칠 조짐이 보이자 민주당은 ‘개별 인사 일탈’이라며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정청래 대표는 “시스템 에러가 아니라 휴먼 에러일 뿐”이라며 야당의 특검 수용을 거부했다. 김경 서울시 의원과의 금전 거래가 발생했을 때 강선우 의원은 지방선거 공천관리위 간사였다. 공천헌금 존재를 폭로하는 탄원서가 제출됐을 때 김병기 의원은 총선 후보 검증위원장으로 이 탄원서를 뭉개버렸다. 이들의 존재가 곧 시스템이었다. 권력 사유화가 정당 시스템 내부에서 얼마나 손쉽게 자행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이 문제를 개인적 일탈로 축소해버린다면 윤석열-김건희 부부도 개인적 일탈일 뿐이다. 연루자 수십 명을 사법처리하거나, 유례없는 3개의 특검을 동시 가동하며 내란 극복을 앞세워 요란을 떨 필요도 없었다. 용산을 향해서는 ‘내란’과 ‘농단’이라는 거대 담론을 동원하면서 자당 핵심 인사의 의혹에는 ‘개인 문제’라는 방패를 꺼내 드는 것은 명백한 이중잣대다. 정의는 내 편의 허물 앞에서 더욱 날카로워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탈은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반복되는 일탈을 개인 문제로 축소하는 순간, 위기의 신호(signal)는 우연한 소음(noise) 정도로 치부되고 만다. 신호를 소음으로 오인하는 조직은 자정 능력을 상실하고 서서히 침몰한다. 대통령 부부가 내던 파탄의 신호를 소음 정도로 애써 무시하다 몰락한 과거 여당이 꼭 그랬다.





이현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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