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장동혁(사진) 대표가 결국 고개를 숙였다. 장 대표는 7일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당시 여당으로서 책임이 크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대표 취임 135일 만에 사과 입장을 밝힌 것이다. 6·3 지방선거를 5개월 앞두고 지지율 부진에 기조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하자 전향적인 입장을 낸 것으로 풀이된다.
장 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이었다”며 “국민께 큰 혼란과 불편을 줬고,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지켜온 당원에게도 큰 상처가 됐다”고 말했다. 35일 전인 계엄 1주년 당시 장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라며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에 비하면 이번 회견에선 비교적 선명하게 계엄에 대한 반성의 뜻을 밝혔다.
다만 장 대표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절연 의지를 밝히진 않았다. 이날 입장문에서 ‘윤석열’이라는 언급은 한 차례도 없었다. 대신 “과거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과 역사의 평가에 맡겨 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겠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쳤지만, 결국 단절에는 이르지 못했다”며 “장 대표의 지지 기반이자 ‘윤 어게인’을 주장하는 강성 지지층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이날 개혁신당을 상징하는 주황색 넥타이를 착용했다. 장 대표가 직접 색상을 골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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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강론 대신 연대 외친 장동혁…넥타이는 개혁신당 상징색
그간 줄기차게 주장하던 ‘자강론’ 대신 “정치 연대”를 말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 정권의 독재를 막는 데 뜻을 같이하면 누구와도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이어 당명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계엄 사과는 회견 당일까지 극소수만 알 정도로 극비리에 이뤄졌다. 장 대표는 발표 50분 전까지 직접 문구를 수정했다.
회견 전까지 장 대표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지난 1일 장 대표의 면전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을 만큼 참았다”(당 신년인사회)며 계엄 사과를 요구했고, 윤 전 대통령과의 단절을 요구했던 김도읍 의원은 5일 정책위의장직을 내려놨다. 전날 밤엔 오 시장과 안철수 의원이 회동한 뒤 “잘못된 과거와 절연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에 더해 부진한 신년 여론조사에 충격을 받은 자치단체장들이 잇따라 입장을 낼 것이라는 말도 돌았다. 당 관계자는 “이대로면 지도부가 외딴섬처럼 고립될 것이란 위기감이 컸다”고 전했다.
일부 측근들은 ‘박근혜 사과 모델’을 들어 장 대표를 설득했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을 석 달 앞둔 2012년 9월 부친의 5·16 군사정변에 대해 사과했고, 한광옥·한화갑 등 진보 진영 인사를 영입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당내 반응은 엇갈렸다. 오 시장은 “잘못된 과거를 단호히 끊어내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변화를 시작하는 선언을 환영한다”고 했고, 박형준 부산시장도 “고심 어린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반면에 당내 소장파 의원들은 “윤 전 대통령과의 단절이 생략된 반쪽짜리 사과”(재선 의원)라고 비판했다. 대안과 미래는 “장 대표의 혁신안은 재건축이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장 대표에게 남은 과제는 야권 연대와 분열된 보수 통합, 쇄신이다. 계엄 사과로 장 대표가 야권 연대 논의를 위한 최소한의 정치적 공간을 마련했다는 평가지만, 개혁신당은 여전히 선거 연합에 거리를 두고 있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가장 중요한 윤 전 대통령과의 단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회견이었다. 선거 연대는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동훈 전 대표가 연루된 ‘당원게시판 의혹’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다. 부산 지역 의원은 “징계든, 아니든 당의 내홍이 격화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민주당은 혹평을 쏟아냈다. 정청래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장 대표를 겨냥해 “철 지난 썩은 사과라도 좋으니 ‘비상계엄 내란에 정말 죄송합니다’란 사과를 듣고 싶다”고 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윤석열과의 절연도 없는 말뿐인 사과”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