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미는 무릎에 이상이 생긴 후 매일 스트레칭으로 아침을 열었다. 하지만 집은 적막함이 맴돌았다. 문영미는 “혼자 산 지는 13년 정도 됐다. 어머니 돌아가신 뒤 혼자 산다.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했는데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고 밝혔고, 간단한 음식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이후 단단히 챙겨 입고 엄동설한에 산길을 오른 문영미는 걷고 걸은 끝에 “심봤다”를 외치며 14년산 산양삼을 캐냈다. 산행을 마친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청주의 한 농촌 마을에 도착한 문영미는 친언니 내외를 만났다. 산양삼을 캔 이유는 언니를 위해서였다. 잠시 후, 언니와 시장을 찾은 문영미는 상인들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눴다. 상인들도 문영미를 알아보며 사인을 요청하는 등 문영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방송 화면 캡처
‘코미디 대모’ 문영미는 1972년 19살의 나이에 고등학교 졸업 후 공채 모집에 합격하며 희극인의 길을 걸었다. 데뷔 초 수려한 외모가 코미디언 활동에 걸림돌이 됐다. 문영미는 “코미디언답게 보면 웃겨야 했는데 멀쩡한 애가 나오니까 안 웃더라. 그러다가 뚱뚱해지니까 거부감이 덜했는지 통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살을 찌우면서 빛을 보기 시작한 문영미는 1992년 KBS 코미디 대상 여자 연기상, 1993년 한국방송대상 여자코미디언상 수상 등 전성기를 맞았다. 문영미는 “행사는 행사대로, 방송은 방송대로 하루에 11군데를 다닐 정도였다. 엄청 벌었다. 사람들이 OO타워가 내 거라고 할 정도였다. 집을 몇 채를 사도 되고 그랬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게 다 내 것이 아니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문영미는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이 없다. 매일 저희를 괴롭혔다. 술 먹고 매일 괴롭혔다. 아버지를 피해서 헛간에 가서 숨어있고 그랬다. 그래서 그때는 생각도 하기 싫다”며 어린 시절 당한 가정 폭력을 언급했다. 문영미의 언니는 “그때 어머니 고생하시는 게 안타까워서 어떻게하면 덜 고생시킬지 고민했다. 그래서 일찍부터 직장 생활하면서 돈을 벌었다”고 돌아봤다.
방송 화면 캡처
문영미는 두 번의 이혼과 수십억 원대의 사기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문영미는 “첫 번째 남편이 아무 것도 없는 건 괜찮았다. 벌면 되고 내가 벌고 있었고, 카페 차려주고 스튜디오 차려주고 뭐가 괜찮을 것 같다면 투자해서 만들어줬다. 그런데 그렇게 다 해주니까 바람피우고 못된 짓을 하더라. 내가 사준 차, 내가 알려준 골프로 바람을 피우더라”며 13년 간의 결혼 생활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후 여행지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 다시 가정을 꾸렸던 문영미는 “이 사람은 더 나빴다. 여자 꼬시는데는 선수였다. 내가 그때 완전 고꾸라졌다. 6개월도 안 살았는데 지금은 남자를 보면 트라우마가 너무 강해서 이제는 넌더리가 난다”고 말했다.
방송 화면 캡처
문영미의 고통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아이를 너무 좋아해서 아이를 가지면 일을 안했다. 오로지 아이를 위해서 험하게 일을 하면 안되지 않나. 내가 아이를 가지면 우린 굶어 죽겠구나 싶어서 아이를 갖는게 두려웠다”며 “그래서 아이를 지웠다”고 밝혔다. 낙태를 떠올린 그는 “너무 어리석었다”며 자책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