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프로농구(KBL) 원주 DB는 우승 후보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시즌 7위에 머물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팀의 기둥이었던 김종규와 이관희 등 베테랑들마저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DB는 세간의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었다. 정규리그 반환점을 도는 8일 현재, 창원 LG와 안양 정관장에 이어 당당히 3위를 질주하며 리그 최고의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DB 돌풍의 중심에는 ‘외국인 듀오’ 헨리 엘런슨(29)과 이선 알바노(30)가 있다. 올 시즌 엘런슨의 합류로 결성된 이 조합은 승부처마다 결정적인 슛과 패스를 주고받으며 팀의 연승 행진을 견인 중이다. 두 선수는 “한국에서 최고의 파트너를 만났다”며 “지금의 기세라면 새해에는 반드시 선두 자리를 탈환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KBL 입성 첫해인 엘런슨은 적응기 없이 단숨에 리그 정상급 해결사로 자리 잡았다. 평균 22점(전체 2위), 9리바운드(6위)를 기록 중인 그는 육중한 체구(2m 7㎝)에도 불구하고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부드러운 슛 능력을 자랑한다. 뛰어난 위치 선정과 농구 지능으로 골밑을 장악하는 모습은 NBA의 슈퍼스타 니콜라 요키치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엘런슨은 요키치와 닮은 점이 많다. 요키치는 전형적인 센터의 틀을 깨고 ‘포인트 센터’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인물이다. 엘런슨 역시 단순한 빅맨에 머물지 않는다. 하이 포스트에서 동료의 기회를 봐주는 시야와 외곽포 능력은 요키치의 플레이 스타일과 판박이다. 흥미로운 점은 엘런슨이 요키치의 상징과도 같은 ‘결혼반지 의식’까지 공유한다는 사실이다. 요키치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행운을 빌며 농구화 끈에 결혼반지를 묶고 뛰는데, 엘런슨 역시 이 루틴을 그대로 따른다. 팬들이 그에게 아내 사랑이 지극한 배우 최수종의 이름을 따 ‘미국 최수종’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이유다.
엘런슨은 “NBA 시절부터 요키치가 롤모델이었다. 신체 조건과 스타일이 비슷해 그의 영상을 보며 연구를 많이 했다”며 “요키치는 득점과 리바운드는 물론 어시스트까지 완벽한데, 나는 아직 패스가 부족하다. ‘KBL의 요키치’가 되기 위해 남은 시즌 이 부분을 집중 보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엘런슨이 마음 놓고 득점포를 가동할 수 있는 배경에는 최고의 파트너 알바노가 있다. KBL 4년 차인 알바노는 역대 최고 수준의 외국인 가드로 꼽힌다. 2023-24시즌 외국인 선수 최초로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던 그는 올 시즌에도 평균 19.1점, 6.4어시스트(2위)로 전성기 기량을 뽐내고 있다. 특히 지난달 고양 소노전에서는 개인 최다인 37점을 몰아치며 후반기에 더욱 강한 면모를 보였고, 그 결과 8일 발표된 3라운드 최우수선수(MVP)에 이름을 올렸다.
두 선수의 시너지는 기록에서도 드러난다. 알바노가 외곽에서 수비를 흔들면 엘런슨에게 공간이 열리고, 엘런슨이 스크린이나 포스트업으로 수비를 끌어모으면 알바노의 돌파 경로가 확보된다. 알바노는 “지금껏 만난 파트너 중 엘런슨과 합이 가장 잘 맞는다. 우리가 유기적으로 움직일 때 상대 수비는 딜레마에 빠진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어 “엘런슨과 나, 그리고 손발이 맞는 동료들이 있다면 디펜딩 챔피언 LG나 스타들이 즐비한 KCC와도 충분히 겨뤄볼 만하다”며 “우리 둘 다 아직 한국에서 우승 경험이 없는데, 이번 시즌 반드시 챔피언 트로피를 함께 들어 올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상위권을 점령한 DB의 화력은 이제 단순한 돌풍을 넘어 ‘우승’이라는 실질적인 목표를 정조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