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이영조(83)가 소식을 전하며 말했다. 그는 최근 독일 도르트문트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 ‘춘향’을 위촉받았다. 이미 ‘처용’(1987), ‘황진이’(1999)와 같은 창작 오페라로 해외 공연을 했던 작곡가다.
독 오페라 극장 감독 임기 4~6년
‘춘향’ 작곡 일찌감치 국내 의뢰
우리는 수장 공석인 단체 많아
새로운 작품을 앞에 놓고 무엇이 부러울까. “어떻게 4년 후의 공연 날짜를 벌써 정할 수 있는지 말이에요.” 도르트문트 극장은 작곡가에게 정확한 타임라인을 줬다. 2026년 대본 완성, 2027년 작곡 완료, 2028년 오페라단 연습, 2029년 4월 14일 초연. 충분한 기간 동안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자는 일종의 자신감이 보인다.
도르트문트 극장의 극장장에게 서면 질문지를 보냈다. 헤리베르트 게르메스하우젠은 2018년부터 극장장 겸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아무래도 가장 궁금한 점은 긴 제작 기간이었다.
“저는 장기 계획의 신봉자입니다.” 그는 2025년 초여름에 ‘춘향’을 주제로 하는 오페라를 구상했고, 대본부터 초연까지 4년을 잡았다고 했다. “2028년 여름까지의 계획이 모두 수립된 상황이었고, 다음 수순으로 2029년을 예정하게 됐다”고 설명하는 그의 답변에는 당연한 듯한 여유로움이 흘렀다.
하지만 그다음 문단부터는 약간 조급해졌다. “저는 한국 오페라 극장과 함께 ‘춘향’을 공동 제작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기획 기간을 가진 협력자가 없어서 연락할 수가 없었어요.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한국 예술 단체의 감독 임기는 보통 3년이다. 그마저 제대로 채우기도, 후임자에게 바로 넘겨주기도 힘든 임기다. 제대로 못 채우고 흐지부지되거나 후임자 결정은 해를 넘기는 게 보통이니. 2029년을 약속할 수 있는 예술 단체는 현재로써는 없다. “독일의 예술 감독 임기는 보통 4~6년이 기본입니다. 만료 2~3년 전에는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고요. 만일 다섯 시즌이 연장된다면 앞으로 8년 정도를 확보하고 계획할 수 있는 거죠.”
이영조 작곡가는 창작자인 동시에 예술 기관의 사정을 잘 아는 인물이다. 한국 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현 국립심포니)의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현재는 국립오페라단의 비상임 이사다. 제작 기간 4년을 받아 든 그의 부러움은 그래서 더욱 깊다. “예술 감독 임기가 3년이면 첫해는 전임자 작품하고, 그다음에는 시간이 없어서 뭘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해외에서 활동하는 뛰어난 성악가들이 “외국 오페라단은 빠르면 5년 전에 캐스팅이 오는데 한국은 1년 혹은 한 달”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말도 이제 식상할 지경이다.
그나마 누가 있기라도 하면 다행이다. 현재 한국 예술계는 수장들의 공백 상태다. 서울 예술의전당, 국립심포니, 국립국악원에 기관장이 없다.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 임기는 올해 초 끝나는데 임기 연장 확정이나 후임자 지명도 당연히 없다.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6월부터 공석인 예술의전당 사장을 찾았다. “예술의전당, 여기도 책임자 선정을 아직 못하고 있죠? 누가 나오셨어요? 직원은 375명이고. 여기 지금 공연이나 연간 일정 수행하는 데는 문제 없어요?” 이재석 예술의전당 사장 직무대리가 답했다. “네,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없어도 되겠네요, 그럼. 사장.”
모두 웃고 넘어갔지만 웃을 일은 아니었다. 농담이라며 웃고 있을 때, 도르트문트 오페라의 극장장은 “한국에는 뛰어난 오페라 가수들이 정말 많은데, 정작 작곡가들은 한국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지 않는다”며 개탄하고 있다. “일본은 ‘나비 부인’, 중국은 ‘투란도트’의 배경이 되는데 한국은 연관된 오페라가 무엇이 있나”라고 되묻고 있다. 그는 또 열심히 자료를 찾아 “‘춘향’이야말로 한국판 ‘라 트라비아타’ 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윽고 한국의 작곡가에게 긴 시간을 주고 독일어로 춘향의 오페라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춘향’이 오페라계의 새로운 고전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비록 4년을 내다보고 함께 할 수 있는 한국의 협력 단체는 한 곳도 찾지 못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