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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의 한반도평화워치] 힘이 주도하는 강대국 세력권 시대, 한국형 전략으로 돌파를

중앙일보

2026.01.0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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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전 외교부 장관
새해 벽두부터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를 군사공격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지난 수개월 동안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 육·해·공군과 우주 사이버 특수군 등 전 영역 통합 체계(JADC2)뿐만 아니라 정보 및 법 집행 당국까지 결합한 첨단 기술이 기반이었다. 이번 공격이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 2기의 외교안보 방향과 인도·태평양(인·태) 지역 등 국제 정세 전반에 미치는 전략적 함의가 크기 때문이다.

패권 다툼 이어지는 국제 상황
불확실성의 시대 이어질 듯
미, 북핵 거리 두기 가능성도
연대와 자강 혼합, 역량 키워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 워싱턴 D.C.의 존 F. 케네디 공연예술센터에서 열린 미 하원 공화당 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연설을 마친 뒤 손짓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힘과 협상을 통한 평화 추구
미국은 지난해 말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에서 서반구 방어 방침을 최우선 지역 목표로 격상시켰다. 이로부터 불과 한 달 만에 베네수엘라를 첫 번째 행동 대상으로 삼았다.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패권을 확실히 하겠다는 뜻이다. NSS는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반구에서 “우방을 결집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확장(Enlist and Expand)”하겠다고 밝히고, 역외 세력의 서반구 침투에 대해 경고했다. 특히 지난 20여 년 동안 중남미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크게 잠식하고 베네수엘라를 일대일로의 중남미 거점으로 추진해 온 중국의 특사단이 마두로를 면담한 직후 공격을 감행한 것은 상징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4년이 되고 지난해 말 중국이 최대 규모의 대만 포위 군사 훈련을 통해 ‘하나의 중국’ 실현을 위한 무력 통일 방침을 재차 밝힌 시점에서 미국마저 유엔 헌장 등을 무력화하는 베네수엘라 공격에 나선 것은 역설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행동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더 큰 우려는 강대국들 간 영향권(spheres of influence) 정책이 부활하고, 미국도 그러한 인식을 NSS에서 밝힌 점이다. 미국은 러시아를 향해 수정주의라는 표현 대신 “전략적 안정성” 재구축을, 중국과는 트럼프의 거래주의적 시각을 염두에 두고 “호혜적인 관계 추구”를 명시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도 최근 연설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이 세력 균형이라고 솔직히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최근 미국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중국의 발전과 충돌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강대국들의 패권 정치에 추세는 적성국보다 동맹과 우방에 대한 전략적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고, 주변화시키고 있다. 유럽에 대한 “문명 말살” 경고나, 북한과 북핵의 위험성이나 한반도 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표현들이 사라진 전례 없는 상황이 이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힘을 통한 평화’ 전략에 입각한 군사력 사용은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들에 대한 강력한 억제 수단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군사 공격 직후 이란 핵 시설 무력화 등 군사 작전 성공을 강조했다. 헤그세스 장관도 트럼프의 힘을 통한 평화 정책이 적대국에 대한 메시지임을 시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즉각 “지정학적 위기와 국제적 사변” 속에서 “핵전쟁 억제력 고도화”를 강조한 이유다.

트럼프는 NSS 서문에서 지난 8개월간 8개의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그 연장선에서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9번째의 성과를 꿈꾸면서 최적의 시점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11월로 예정된 미국 중간 선거 때까지 향후 10개월이 가장 민감한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다. 4월 미·중 정상회담과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담 등이 북·미 정상회담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미, 북핵보다 인·태 지역 안보에 관심
인·태 지역이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의 최우선 순위에서 서반구에 밀리긴 했지만, 여전히 두 번째 핵심 지역에 포함됐다. NSS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의 해양 안보, 특히 대만 해협의 현상 유지를 부각하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 거부(denial) 전략을 중심으로 인·태 안보에 대한 동맹국들의 지역 역할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동맹의 우선순위가 인·태 지역 집단적 억제, 이중 억제로 바뀌고 한반도 의제는 주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러시아의 위협을 억제할 전략적 중심축이라고 밝힌 것도, 한·미동맹의 현대화나 전략적 유연성이 강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역내 중대 위협으로 간주되던 북핵 위협 언급은 사라졌고, 한국은 국방비 증액 차원에서 거론됐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병력 규모보다 역량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나선 건 네트워크 전쟁의 시대적 흐름에서 일정 부분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북한의 핵무장이 고도화되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연루 가능성과 피해 취약성을 줄이려는 ‘거리 유지(out-boxing)’ 전략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문제의 성격은 달라진다. 특히 최근 NSS에서 북한의 비핵화가 사라진 데 이어 지난달 트럼프 2기 출범 후 최초의 핵협의그룹회의(NCG)에서 과거 유지해온 “공동기획 및 공동 실행” 표현마저 사라진 것을 미국의 핵보장 의지 약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이 핵 선제 사용 정책을 천명하고, 북·러 간 전략적 협력이 제도화되는 상황에서 이런 움직임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군축을 염두에 둔 미국의 유화 조치가 아니기를 바란다.

이처럼 한국은 복합 위기 시대의 고난도 복합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중대한 전환기에 있다. 새해 들어 한·중 정상 회담에 이어 이달 중순 예상되는 한·일 정상회담 개최는 격동하는 세계 질서에 대응하는 치열한 외교전이다. NSS 발표 직후 트럼프의 장남은 카타르 도하 포럼에서 “아버지의 최대의 장점은 그가 무슨 행동을 할지 아무도 모르며,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이 정직한 거래를 압박한다”고 했다.

세계는 향후 3년간 트럼프의 불확실성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주목하고 있다. 유럽·일본·중동 모두 이중·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려고 한다. 지난해 미국과 상대하면서 더욱 자신만만해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및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위주의 신흥 개발도상국)와 연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몇 안 되는 미국의 모범 동맹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불확실성은 산적해 있다. 미국 이외에도 위기의 요인은 도처에 깔려 있다. 이런 위험 요인을 최소화하고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맹 연대와 자강을 혼합해 전략적 공간을 확대해야 한다. 동맹과 자강을 토대로 글로벌 체스판을 전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다층적 연대망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형 전략을 통해 새 국제질서 형성 과정에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윤병세 서울국제법연구원 이사장·전 외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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