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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의 시선] 반도체 공장 어디 짓느냐는 기업의 몫

중앙일보

2026.01.08 07:27 2026.01.0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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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논설위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입주하는 공장을 전북 새만금으로 옮기라는 요구는 기존의 지역 산업 유치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친환경 에너지를 지렛대로 삼아, 이미 확정돼 추진 중인 국가 전략 산업 계획을 정치적으로 뒤집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그랬다.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일부 전북 정치인들이 제기한 주장에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금이라도 전기가 많은 지역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이 있다”고 동조하면서 문제를 키웠다. 논란이 커지자 8일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은 “클러스터 대상 기업 이전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이전은 기업이 판단해야 할 몫”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클러스터 이전론에 선을 그은 모양새지만, 앞으로도 비슷한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은 여전하다.

용인새만금 이전 요구는 무리
청와대 뒤늦게 “이전 검토 안 해”
지역 장점 살려 기업 선택 받아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26일 CBS 라디오 '경제연구실'에 출연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론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이번 새만금 이전 요구는 중앙정부를 움직여서 짓고 있는 공장까지 이전하라고 요구한 점에서 매우 부적절했다. 에너지 지산지소(지역 생산·지역 소비)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 기준으로 볼 때 새만금이 최적의 장소인지도 불분명하다.

정부의 전력통계정보시스템 자료를 보면 2024년 가장 많은 전력을 생산한 시도는 화력발전소가 밀집한 충남(10만3618GWh)이다. 자급률 기준으론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경북과 전남, 그리고 충남이 200%를 넘는다. 자체 소비 전력의 두 배를 생산해 절반은 다른 지역으로 보낸다는 의미다. 반면 전북(1만5878GWh)은 2024년 전력 생산이 충남의 15% 수준이고 자급률도 73%에 그쳤다. 새만금에 100% 재생에너지를 쓰는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한다고 하지만 전력 생산 시간이 제한된 친환경 에너지만으로는 반도체 공장이 쓰는 막대한 에너지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그렇다면 기존 전력 생산이 많거나 자급률이 높은 지역에서 친환경 에너지 시설을 보강할 테니 반도체 공장을 우리 지역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할 텐가. 이렇게 되면 끝이 없다. 정치적 압박으로 기업의 선택을 왜곡한다면, 피해는 해당 산업과 국가 전체로 확산된다.

다만 지금처럼 수도권이 지방의 전력과 자원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 모델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방에서 나오는 불만엔 타당한 문제의식이 있다. “전기는 주로 지방에서 생산하는데,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공장은 왜 수도권이 독식하느냐”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지방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수도권에서 걷힌 세수가 지방교부금과 국고보조금 형태로 지방에 지원되지만 이것만으로 수도권 집중을 정당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도 사실이다.

해법은 분명하다. 지방이 중앙정부를 향해 이전을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이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지를 만들어내는 경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업용수도 풍부해야 하고 인재가 정착할 수 있는 주거·교육·의료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일본 규슈는 지방정부와 기업이 함께 인프라·인력·공급망을 장기간 구축한 결과 반도체 단지로 성장했다. 소니 등 일본 기업뿐 아니라 대만의 TSMC까지 규슈에 투자한 것은 지방이라서가 아니라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몰리는 미국 텍사스주도 마찬가지다. 2024년 기준으로 텍사스주는 미국 내 천연가스 생산 1위 지역답게 천연가스 발전 비중이 44%나 된다. 하지만 풍력 발전 비중이 24%, 태양광도 10%를 차지하는 등 신재생 에너지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원자력과 석탄 발전도 뒤를 받치고 있다. 여기에 주 정부 차원의 과감한 세제 혜택, 대학과 연계한 인력 양성 등을 결합해 반도체와 첨단 제조업을 끌어들였다. 그 결과 삼성전자도 미국 내에서 텍사스를 핵심 생산 거점으로 삼았다. 이는 강제 이전이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다.

지난해 12월 30일 촬영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SK하이닉스 반도체 일반 산업단지. 김정훈 기자
전북 정치권에서도 지금 당장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이전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현실론이 있었다. 새만금 지역에 국제학교를 신설하는 계획도 있다고 한다. 이런 노력과 준비를 통해 새만금을 기업 친화적인 곳으로 만드는 게 먼저다. 친환경 에너지 생산을 협상 카드가 아닌 경쟁력의 토대로 바꿔야 한다. 중앙정부의 역할은 지자체가 이런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 특정 기업의 공장을 특정 지역에 배정하는 것이 아니다.

수도권 역시 송전망 확충과 자체 발전소 건설 등을 통해 전력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 지방이 참아줄 것이라고 기대할 것인가.





김원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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