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차남의 숭실대 편입학 특혜 의혹과 관련, 김 전 원내대표의 청탁 시도 정황과 일자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학교 측에 메모 형태로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원내대표의 전 비서관 김모씨가 제기한 의혹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증거물 중 하나지만, 경찰은 수사 4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관련자를 조사하거나 일지를 확보하지 않았다.
8일 숭실대 전 대외협력처장 A씨는 중앙일보에 “김병기 의원실의 김 전 비서관과 이지희 동작구의원이 2022년 4월 27일 오전에 찾아와 편입 방법에 대해 문의했다는 내용이 개인 일지에 적혀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김병기 의원실의 보좌관 소개로 왔다고 말했었고, 나는 편입학 담당자를 연결시켜 줬었다”며 “다만 당시엔 차남에 대한 내용인지는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김 전 비서관이 지난해 11월 동작경찰서에 “2022년 봄 쯤 김 전 원내대표 지시로 차남의 편입학을 알아보기 위해 학교를 방문했다”며 “김 전 원내대표가 ‘차남을 입학시키는 일에 전력의 90%를 쏟으라’고도 했다”고 진술한 내용과 일치한다. A씨의 일지가 김 전 비서관 진술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는 물증인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9월 10일부터 차남의 편입학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은 4개월 동안 A씨에게 연락을 취하거나 증거물을 확보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이와 관련해 수사 기관에서 연락 온 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 질의에 “비서관의 진술에 대해선 사실관계 확인을 하고 있었다”고만 답했다.
이 때문에 경찰이 김 전 원내대표와 관련된 의혹들을 제대로 수사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경찰 내부에서부터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의혹들을 폭로한 김 전 비서관의 증언이 구체적임에도 앞선 사례처럼 관련 정황을 확인하지 않으며 ‘늑장 수사’란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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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맨’은 이미 휴대폰 교체
‘수사 골든타임’이 흘러가는 사이 관련 피의자들의 증거 인멸 정황도 계속 포착되고 있다. 김 전 원내대표가 2020년 전직 동작구의원 B·C씨에게서 각각 1000만원, 2000만원을 받고 몇 달 뒤 돌려줬다는 의혹과 관련해 경찰은 8일 오후 B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지난해 11월 서울 동작경찰서가 이같은 의혹이 담긴 탄원서를 확보한 지 2개월 만이다. B씨의 변호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탄원서 내용은 B씨가 1000만원을 전달했다는 것”이라며 “이외에 주고받고 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의혹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C씨는 9일 출석 예정이다.
탄원서에 따르면 뇌물을 줬다는 시점은 6년 전이다. 김 전 원내대표가 의혹이 적힌 탄원서를 확보한 지도 2년 가까이 지났다. 증거가 이미 인멸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 뇌물 수수 의혹의 ‘키맨’으로 불리는 이지희 동작구의원이 최근 안드로이드 기반 휴대폰에서 아이폰으로 교체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 4일 이 구의원에게 SMS 시스템으로 문자가 전송됐던 것과 달리 8일엔 아이폰 시스템인 ‘i 메시지’로 전송됐다.
B씨가 직접 작성한 탄원서에 따르면, 이 구의원은 김 전 원내대표를 대신해 2020년 3월쯤 B씨에게서 1000만원을 받았다가 돌려준 인물이다. 여권 관계자는 “이 구의원은 동작구에서 김 전 원내대표 부부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며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의혹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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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는 김경, 텔레그램부터 탈퇴
다른 의혹 수사와 관련해서도 관련자들이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포착됐다.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민주당 서울시당 공천관리위원이었던 강선우 무소속 의원에게 공천 뇌물 1억 원을 전달한 의혹이 불거진 김경 서울시의원은 지난 7일 오후 10시50분쯤 텔레그램을 탈퇴했다. 이어 카카오톡 계정도 ‘대화가 불가능한 사용자’로 표시되도록 했고, 인스타그램 계정도 비공개로 전환했다. 김 시의원은 텔레그램 탈퇴 이유를 묻는 메시지에도 답하지 않았다.
계정을 탈퇴하고 재가입하면 대화 내역 및 사진·파일 등이 삭제된다. 때문에 12·3 비상계엄 직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정진석 전 비서실장 등이 텔레그램을 탈퇴했을 때도 증거인멸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청 공공범죄수사대는 8일에서야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고 김 시의원에 대한 통신 영장을 신청했다.
김 시의원은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다. 관련 사건이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에 배당된 날(지난해 12월 31일) 출국했지만, 경찰은 이 사실을 몰랐고 지난 5일에야 경찰은 법무부에 김 시의원에 대한 ‘입국 시 통보’ 조치를 신청했다.
한편 경찰은 쿠팡 대표였던 박대준 전 대표도 8일 참고인으로 소환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국정감사를 앞둔 지난해 9월 박 전 대표 등과 만나 고가의 식사를 하면서 쿠팡에 취업한 김 전 비서관 등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미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