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故) 안성기의 영결식이 9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명동성당 파밀리아 채플에서 엄수됐다. 200석 규모의 예배당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는 이들로 가득 찼다.
이날 영결식은 오전 8시에 시작한 추모 미사가 끝난 뒤에 이뤄졌다. 추모 미사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의 집전으로 봉헌됐다. 배우 정우성이 영정을, 이정재가 고인에게 추서된 금관문화훈장을 들었고, 배우 설경구·박철민·유지태·박해일·조우진·주지훈 등이 운구를 맡았다.
영결식은 김두호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상임이사가 고인의 약력을 읊으며 시작됐다. 김 상임이사는 “안성기의 배우 활동은 한국영화 중흥기로 분류되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흥행영화 전성기를 거쳐, 글로벌 한국영화 시대에 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이어 “언제 어디서나 선후배, 동료, 영화인들에게 따뜻하고 신뢰받고 존경받는 생애를 보냈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고인의 생전 발언과 필모그래피를 교차 편집한 7분가량의 영상이 상영됐다. 영상은 장례위원회에 속한 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이 제작했다. 고인의 영정 뒤 펼쳐진 스크린엔 아역배우 시절부터 ‘라디오스타‘(2006) 등 최근 작품 속 모습까지 흘러나왔다.
추모를 위해 모인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울고, 웃고, 춤췄던 배우 안성기의 모습을 마주했다. 이어 “누군가 내게 생애 최고작을 묻는다면 ‘나의 최고 작품은 언제나 다음 작품’이라는 마음이 여전하다”(한국영상자료원과의 2017년 인터뷰)고 말했던 사람 안성기의 말을 되새겼다.
조사(弔詞)는 고인의 소속사 공동대표인 배우 정우성, 공동 장례위원장인 영화감독 배창호가 맡았다.
정우성은 “언제인지 기억도 되살리기 어려운 시점, 선배님께 처음 인사를 드렸을 때 건네주신 인사말을 기억하고 있다”며 “‘우성아’, 오랜 시간 알고 지낸 후배를 대하시듯 친근하게 제 이름을 불러주셨다”고 소회했다.
그는 김성수 감독의 영화 ‘무사’(2001) 촬영을 떠난 2000년 중국에서의 일화를 꺼냈다. “중국으로 떠났을 때 약 5개월이라는 시간을 선배님과 함께 보냈는데,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선배님은 늘 모든 스태프의 이름을 불러주셨다”라며 “그 온화함의 깊이는 감히 가늠할 수 없다”고 추억했다.
“수많은 가치가 지나가는 시대에 가치의 소중함을 안성기라는 언어로 표현하셨습니다. 혹시 오늘 누군가가 선배님께 ‘어떠셨냐’ 여쭤보면 ‘응, 난 괜찮았어’라고 정갈한 미소로 답하실 모습이 선합니다. 편안히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한없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선배님.”(정우성 배우)
배창호 감독은 안성기 배우를 ‘안형’이라고 부르며 고인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배 감독은 “1980년 봄, 광화문의 한 다방에서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눈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며 “어린 시절부터 스크린에서 봐왔던 안형은 당시 충무로에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에게서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연기자의 탄생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동서식품의 광고 제의를 받은 고인이 배 감독에게 “영화에 방해가 될까 걱정”을 털어놓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고인과의 추억을 읊던 감독은 “정말 엊그제 같은데, 그동안의 세월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 영화를 사랑하고 촬영현장을 집처럼 편하게 지냈던 안형, 그동안 함께하여 즐거웠고 든든했고 고마웠습니다”라며 조사를 맺었다.
유가족 대표로 선 고인의 장남 안다빈씨는 “하느님 품으로 떠나신 아버님을 배웅해주시기 위해 아침 바쁘신 시간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올린다”고 어렵게 운을 뗐다.
울음을 참으며 말을 이어간 안씨는 “아버지 서재는 워낙 신성한 곳이라고 생각해 조심히 들어가기도 했던 공간인데, (이번에)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곳에 들어가 정리하게 됐다”며 “기억나진 않지만 다섯살쯤 유치원에서 그림을 그려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걸 찾았다. 저에게 써준 편지이긴 하지만 모두에게 남기고 간 메시지 같기도 하다”면서 편지를 낭독했다.
편지에서 고인은 “다빈아, 네가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나던 날, 아빠를 닮은 작은 널 본 순간 눈물이 글썽거렸다. (...) 아빠는 다빈이가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고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맺었다. “내 아들 다빈아, 이 세상에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1993년 11월 아빠가.”
이어 고인을 향한 헌화가 이어졌다. 영결식장을 메운 200여명의 이들이 줄이어 고인의 영정 앞에서며 인사를 올렸다.
이날 영결식엔 배우 정혜선·예지원·한예리·정준호·변요한·현빈, 영화감독 임권택·이준익·민규동 등 영화계 동료들이 추모를 위해 모였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고인과 영화 ‘잠자는 남자’(1996)를 찍은 일본의 거장 오구리 고헤이(小栗康平) 감독도 자리했다. 고인은 이날 장지인 경기도 양평 별그리다에서 안식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