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두 배 가까이 뛸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중심의 수출 호조에 더해 소비심리 개선과 건설업 회복으로 내수 여건도 나아질 것이란 판단이다. 하지만 원화가치 하락과 급변하는 통상 환경 등 위험 요인을 고려하면 안심하긴 이르다. 무엇보다 잠재성장률 하락세를 막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9일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0%로 전망했다. 기존 전망치(1.8%)보다 0.2%포인트 높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기존 전망보다 0.1%포인트 높은 1.0%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눈높이를 끌어올린 배경엔 수출 상승세가 있다. 지난해 한국의 연간 수출액은 전년 대비 3.8% 늘어난 7097억 달러(약 1028조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올해도 수출이 4.2% 증가하며 또 한 번 신기록을 깰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교역 둔화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의 영향으로 반도체 수출이 강세를 보일 거란 분석이 깔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출이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하는 가운데 내수 회복세도 정부의 자신감에 힘을 보탰다. 내수의 핵심인 민간소비는 지난해 1분기 역성장 이후 반등해 연간 기준으로 1.3% 증가했다. 소비심리 개선 움직임과 증시 활성화 등을 고려하면 올해는 민간소비 증가율이 1% 후반까지 상승할 거란 게 정부의 예상이다.
이형일 재정경제부 1차관은 “지난해 9.5% 감소하며 성장률을 갉아먹었던 건설업도 올해는 플러스로 전환할 것”이라며 “국민성장펀드 도입, 공공기관 투자 확대 등의 정책 효과도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보다 8.1% 늘어난 총지출과 지난해보다 16조1000억원 증가한 633조8000억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뒷받침한다는 구상이다.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는 국제통화기금(IMF, 1.8%)∙한국개발연구원(KDI, 1.8%)∙한국은행(1.8%) 등 국내외 주요 기관보다 높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수출과 사상 최고가를 새로 쓴 증시 등에 고무된 분위기가 반영됐다. 다만 현 상황을 장밋빛으로 평가하긴 어렵다. 한국 경제성장률은 올해를 포함해 4년 연속 2%의 벽에 갇혀 있어서다. 지난해 성장률만 보면 미국(2.0%)∙일본(1.3%) 등 선진국에도 못 미쳤고, 뒤에선 대만(7.3%) 등이 가파르게 추격하는 중이다.
올해 성장률(2.0%) 또한 지난해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 등을 고려하면 확실한 회복세로 판단하긴 어렵다. 무엇보다 현재의 상승세가 수출에 크게 기댄 만큼 수출의 온기가 내수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도 관건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낙관론에 깔린 반도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업종이 본격적인 관세 영향권에 들어가 그 타격 정도를 현재로썬 파악하기 어렵다”며 “원화 가치 하락세가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그에 따른 물가 압력 등을 고려하면 소비 회복세 또한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보다 숨통은 트이겠지만, 핵심은 잠재성장률 하락세를 뒤집을 수 있느냐다. 2010년 3%대였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생산인구감소, 투자 위축 등으로 최근 1%대 후반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대로라면 2040년대엔 0%대로 떨어진다. 성장 동력이 꺼져 가고 있다는 신호다.
정부도 위기감을 드러냈다. 이날 발표한 올해 경제성장전략에서 잠재성장률 반등을 최우선 목표로 제시한 것이다. 우선 반도체 분야에서 압도적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금융·재정·세제 등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 소속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를 신설하고, 뼈대가 될 기본 계획도 연내로 수립할 계획이다.
AI 인프라 구축에도 속도를 낸다.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을 위한 민관 합작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피지컬 AI 세계 1위를 목표로 내세운 제조업 분야에선 로봇∙자동차∙선박 등 7대 선도분야를 중심으로 산학연 협력 속도를 끌어올릴 계획이다. 강기룡 재경부 차관보는 “탄탄한 제조업 기반과 그에 따른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피지컬 AI 만큼은 1등으로 도약할 수 있는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발표한 차세대 전력반도체, 초전도체, 그린수소∙소형모듈원전(SMR) 등 초혁신 15대 프로젝트는 투자를 대폭 늘려 성과를 빨리 끌어낸다는 계획이다. 올해 30조원 규모로 신설하는 국민성장펀드와 모태펀드 자금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바이오 분야는 규제도 대거 풀어준다.
차세대 전력반도체와 액화천연가스(LNG) 화물창 등은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한다.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되면 연구개발(R&D) 세액공제율이 중소기업 40~50%, 대∙중견기업은 30~40%로 높아진다. 일반 R&D 세액공제율(대기업 최대 2%)과 비교하면 혜택이 매우 크다. 여기에 공장 등의 사업화 시설이나 연구시설에 대한 투자액도 ‘통합투자세액공제’로 돌려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올해 상반기 중에 전략수출금융기금을 신설한다. 방산∙원전 등 국가 간 경쟁이 심화하는 분야에서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를 지원하는 차원이다. 정부가 출연이나 보증을 통해 기업을 지원하되 혜택을 받은 기업은 이익 일부를 중소∙중견기업에 투자해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형태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첨단산업, 벤처·창업, 자본시장 등으로 자금 흐름을 대전환하는 생산적 금융을 본격화해 잠재성장률 반등을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올해를 경제 대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와 달리 부처 간 엇박자 우려도 나온다. 기존 기획재정부가 재경부와 기획예산처(기획처)로 분리된 여파다. 재경부는 ‘광복 100주년, 2045 대한민국 경제 대도약’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올해 상반기 중 현 정부 내에서 추진할 실행 계획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기획처는 이미 중장기 도전과제와 관련한 ‘미래비전 2050’을 올해 안에 수립할 뜻을 밝힌 바 있다. 중장기전략위원회와 협의해 2030년을 전후한 중기·장기 등 전략 목표를 수립하고, 추진 과제를 정하는 형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갈라진 부처마다 상정하는 기간이 다른데, 계획과 이행에서 엇갈리는 모습이 보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