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협상을 준비하기 위한 범부처 협의체가 9일 출범했다. 한국이 범정부 차원에서 협상 진용을 갖추고 대미 전략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미국이 이에 얼마나 호응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날 임갑수 한·미 원자력협력 태스크포스(TF) 정부대표 주재로 열린 첫 TF 회의에는 외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통상부,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연구원, 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통제기술원 등 관계 부처와 기관이 참여했다. 회의에선 "농축·재처리와 관련된 주요 쟁점과 과제에 대해 부처별 역할과 협력 체계를 점검하고, 대미 협의 대응 방향과 계획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또 "향후 주기적으로 TF 국장급 회의 및 실무협의회를 개최해 농축·재처리에 관한 주요 사안을 단계적으로 검토하고 평화적·상업적 목적의 농축·재처리 역량 확보를 위한 국내외 여건 조성에 대해 범정부 차원의 대응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임 대표는 2016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비확산전문관으로 근무하는 등 원자력·비확산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1996년 외무고시 29회로 외교부에 입부해 유엔 대표부 참사관, 외교부 유엔과장 등을 역임했다. 제재 분야에 대해서도 관련 저서를 집필할 정도로 정통하며, 평화외교기획단장으로 재직하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종전선언 등 현안과 관련해 대미 소통을 맡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을 직접 상대한 경험이 있다는 뜻이다. 이후 2022년 2월부터 루마니아 대사를 지내다 이번에 원자력 협상 대표로 임명되면서 이임하고 귀국했다.
외교부는 이번 TF와는 별도로 임 대표의 업무 지원을 위한 부내 TF도 지난 5일 구성했다. 이 TF에는 임 대표와 국제원자력국 실무진 3명이 참여한다.
앞서 지난해 8월과 10월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정리해 11월 발표된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는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lead to) 절차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미국이 처음으로 한국의 자율적인 핵연료 주기 완성을 지지할 가능성을 문서로 명문화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다만 해당 문안을 현실화하려면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이 필요하다고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여전히 칼자루는 미국이 쥐고 있다는 뜻이다.
현행 협정은 우라늄 농축에 대해 “양자 고위급 위원회 협의에 따라 서면 합의로 20% 미만에 한해 농축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재처리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서면으로 합의하는 경우에만 이뤄질 수 있다”고 명시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이 우라늄 농축을 요청하거나 미국과 협의를 한 사례는 없다. 재처리도 사실상 금지된 것으로 평가됐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외신 기자회견에서 한·미가 협의 중인 한국의 우라늄 농축 권한 확대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이 (농축 우라늄을) 자체 생산하고 ‘5 대 5’로 동업하자고 했다”고 처음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동업을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에게 맡겼다”라고 덧붙였다. 농축·재처리 문제를 ‘동업’이라는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도 주요한 변수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또 러트닉 장관은 한·미가 조인트 팩트시트를 확정하기 전 비확산 우려를 이유로 농축·재처리 관련 문항에 적극적으로 제동을 걸었던 인물이다. 실제 워싱턴 조야에서는 비확산을 우려하는 원칙론자들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이 요구하는 일본 수준의 ‘포괄적 승인’, 즉 미리 합의한 범위 내에서는 미국의 개별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핵연료 주기 활동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협상 대표를 조기에 임명하고 범부처 태스크포스(TF)와 외교부 TF를 가동하며 대미 설득 사전 준비에 속도를 내는 건 이 때문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핵추진 잠수함이나 원자력 농축 문제 등도 조속히 내년에 협의해서 합의를 이뤄나가는 것으로 추진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