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장관으로서 적합하다’는 응답이 16%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갤럽 조사 기준으로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적합도였다. 보좌진 갑질, 부모 찬스, 뻥튀기 청약, 부동산 투기 등 끊이지 않는 의혹이 이 후보자에 대한 국민 여론을 악화시킨 것이다.
한국갤럽은 2013년부터 장관 후보자 5명, 총리 후보자 9명에 대한 적합 여부를 조사해왔다. 이 중 ‘적합하다’ 비율이 가장 낮았던 후보자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6월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로 9%였다. 그는 인사청문회 전에 자진 사퇴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6~8일 조사해 9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이 후보자 장관 적합도는 16%로 문 전 후보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수치였다. 이 후보자 직전까지 역대 두 번째로 낮은 사람은 윤석열 정부 때인 2022년 5월 정호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24%에 그쳤다. 인사청문회를 거쳤지만 결국 그 역시 자진 사퇴를 했다.
이 후보자가 장관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답변은 47%, 의견 유보는 37%였다. 부적합 의견은 문 전 후보자(64%), 조국 전 법무부 장관(청문회 전 57%, 청문회 후 54%)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높았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답변만 떼놓고 봐도 37%가 ‘적합하지 않다’고 답했다. ‘적합하다’는 답변도 26%로 전체 평균과 10%포인트밖에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현재로선 ‘낙마는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9일 “인사청문회까진 그대로 간다”며 “지금은 우리가 이 후보자에게 그만두라, 마라 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 기류도 아직까진 없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아직까진 각종 의혹에 비해 이 후보자의 경제 전문성,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균형추 역할 등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더 많다고 보고 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은 “(다른 정당 출신이라) 과거의 일이나 갑질 논란은 스크린(검증)되기 쉽지 않다”고 이날 한 유튜브 방송에 나와 말했다.
청와대의 정무적인 판단도 있다. 이 후보자를 향한 의혹 제기와 부정적 여론이 이 대통령 지지율엔 영향을 안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5%포인트 오른 60%를 기록했다. 긍정 평가를 한 답변자 중 30%는 그 이유를 ‘외교’로 꼽았다. 한국갤럽은 “중국 국빈 방문 일정으로 국정 평가에서도 외교 사안이 재부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이 대통령 직무 수행을 부정 평가한 33% 응답자의 부정 평가 이유다. ‘경제·민생’이 22%로 1위였는데, 1% 이상 응답 중 ‘인사’가 없었다. 보통 인사 논란이 있으면 부정 평가 이유에 ‘인사’가 등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여론조사 업체 관계자는 “이 후보자는 보수 쪽 인사고, 이 대통령과 이 후보자는 개인적 인연도 없어서 여론이 둘을 별개로 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상황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이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19일 열린다. 열흘 가까이 남았는데 의혹은 계속 나오고 있다. 9일만 하더라도 추가 갑질 폭로가 나왔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녹음 파일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전직 보좌관에게 “언론 담당이 그것도 모르냐. 너 그렇게 똥오줌도 못 가리냐”고 했다. 보좌관이 대꾸하지 않자 이 후보자는 “말 좀 하라”며 고성을 질렀다. 전화를 건 시간은 오후 10시 25분이었다.
또 이 후보자의 장남 김모씨가 2022년 10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입사 과정에서 ‘부모 찬스’ 의혹이 불거진 논문을 경력 사항에 기재한 사실이 드러났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KIEP으로부터 받은 채용 서류로 확인됐다.
천 원내대표가 전날 제기한 ‘청약 점수 뻥튀기’ 의혹도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 후보자는 2024년 서울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 전용면적 137.6㎡(137A형)에 청약을 넣어 일반공급 1순위로 당첨됐는데, 이 때 이미 결혼을 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아들을 부양 가족으로 포함시켰다. 이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 청약의 끝판왕을 찍었다”(천 원내대표)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야당은 지명 철회를 압박하고 있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9일 “주택 공급 제도의 공정성을 무너뜨렸다는 의혹을 받는 인사가 국민 세금과 재정을 관리하겠다는 것 자체가 국민 신뢰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일”이라고 했다. 천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 “지명 철회는 당연하고, 부정 청약 당첨 취소는 물론 당장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이 후보자의 부정 청약 의혹에 대해 “진보층만이 아니라 통상적인 보수층도 용인하기 어려운 하자”라며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했다.
중요한 건 민주당 내부 여론이다. 인사청문회까지 지켜보려는 청와대는 ‘청문회 뒤 여당 여론’이 반전 없이 임명에 부정적이라면 임명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당의 입장은 청문회까지 지켜본다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군도 같은 입장을 보였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뉘앙스는 다소 다르다. “일반 국민 정서에 맞는 판단을 할 것”(한병도), “갑질 의혹도 상당히 충격적”, “청문회에서도 부적격하다면 청와대에 강력히 얘기할 것”(박정), “(부정 청약은) 명확히 법적 문제”(백혜련) 등의 발언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 인사는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서 자진 사퇴한 강선우 의원의 전례를 보더라도 이 후보자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계속 새로운 의혹이 나오면 청문회에서 당이 방어하기도 어려워지고 그럼 민주당 차원에서 이 후보자를 반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이 후보자 의혹은 선을 넘었는데 꼭 임명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진 의원들이 많다”며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