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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낼 줄 몰랐던 순둥이 안성기, 운전 중 튀어나온 욕은…"

중앙일보

2026.01.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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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호
아역 천재 배우 안성기를 알게 된 건 김기영 감독님의 영화 ‘하녀’를 통해서다. 1960년 제작된 영화였고, 안성기는 이미 50년대 말에 아역으로 데뷔했으니 1965년 영화계에 입문한 나보다 그는 훨씬 앞선 영화계 대선배라 할 수 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1979년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을 준비하던 때다. 어느 날 조감독 배창호와 함께 충무로에 있는 영화 편집실에 들렀는데 한 젊은이가 인사를 꾸벅하며 “아역 배우 안성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멋쩍어 하면서도 구김살 없는, 수줍어하는 미소는 그 후 한 번도 변치 않고 지금까지 계속 됐는데 그 미소가 이제 실제로 영영 사라진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는다.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안성기를 주연 배우로 캐스팅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배창호의 조언 때문이다. 나는 당시 원작의 주인공 덕배가 사팔뜨기였기에 실제로 사시인 신인 배우를 공모해 연기 연습을 시키고 있었다. 연기 지도에 애를 쓰던 조감독 배창호가 “도무지 가망성이 없다”며 탄식하더니 얼마 전 만났던 청년 안성기가 그 역할을 맡으면 안되겠냐고 의견을 냈다.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였다. 오래 전 내가 조감독 시절에 최인호의 소설을 읽으며 ‘예술은 꿈만 꾸어서는 안된다.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깨우침을 얻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흔쾌히 배창호의 의견을 채택했고, 그것이 안성기의 성인 배우로서의 시작이 됐다.

안성기는 섬세한 예술가의 자질이 풍부한 배우였다. 그가 시나리오를 쓰고 있음을 알게 된 것도 어느 날 수줍게 자기가 쓴 시나리오라면서 보여줘서다. 윤흥길 작가의 단편소설을 원작 삼은 ‘기억 속의 들꽃’ 등 여러 편이었다. 시나리오 작업에 여러 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나는 은근히 주눅이 들었다. 또 안성기는 그림에도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개인전을 해도 될 만큼 다양한 그림들이 있었다.

나는 교회에서 간증을 하던 중 안성기와 나를 비교한 적이 있다. 나는 성질이 급하고 즉흥적이어서 법이 없으면 범죄를 쉽게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한데 안성기는 법이 있으나 없으나 본성이 안정돼 있어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평했다. 안성기는 실제로 평소에도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늘 미소를 지었고 웃음이 많았다. 욕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기껏 욕을 한다는 것이 운전 중 갑자기 무리하게 차선을 바꾸는 다른 운전자 때문에 당황할 때 원망하듯 “나쁜 놈!”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내가 영화 제작에 계속 실패하면서 대가족과 함께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갈 곳이 없을 때, 마침 안성기에게는 용인시 교외에 세컨드 하우스가 있었다. 내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안성기가 너그럽게 웃으며 일체의 금전적 거래도 없이 그 집을 빌려줘 아버지와 함께 입주했었다. 그것도 1년도 넘게. 지금 생각해도 머리 숙여 감사한 일이다.

그런 착하고 어진 안성기가 혈액암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아무 위로도 되지 못한 내 모습이 한심할 뿐이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였던 안성기는 그 모든 것을 성자처럼 품에 안고 미인이셨던 어머니, 성인 같았던 아버지 뒤를 따라 영혼의 나라로 갈 것이다. 안녕!!! 착하고 어진 국민배우 안성기여.

이장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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