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흥행에 치중""힘빠진 작가"…허스트 전시 여는 국립현대미술관 왜

중앙일보

2026.01.09 16:00 2026.01.09 17:0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범상어 사체를 포름알데히드 수조에 담근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의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 앞에 선 데미안 허스트. 2012년 4월 테이트 모던 전시 때 모습이다. EPA=연합뉴스
" 이미 십수 년 전에 힘 빠진 영국 미술가를 데려와 지금 여기에서 어떤 맥락의 전시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김복기 아트인컬처 대표) "
" 국립현대미술관은 한국 미술의 중심을 잡아주고 미래를 제시해야 할 기관 아닌가. '흥행'이 정책인가. (김노암 아트스페이스 휴 디렉터)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3~6월 데미안 허스트(60)의 아시아 첫 회고전을 연다고 발표하자 미술계에서 나온 우려의 목소리다. 미술관은 "작가의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아우르며 죽음과 영생, 과학ㆍ의학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욕망, 예술 가치와 시장 논리 등 작가의 핵심 주제를 조명해 현대사회의 삶과 가치에 대한 담론의 장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데미안 허스트, 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 백금, 다이아몬드, 인간의 치아. 사진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데미안 허스트는 런던 골드스미스 칼리지 학생이던 1988년 버려진 창고에서 자신과 동료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한 '프리즈(Freeze)'를 기획하며 '젊은 영국 예술가들(yBa)'의 기수로 떠올랐다. 1991년 첫 전시에선 포름알데히드 수조에 죽은 상어를 넣은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을 선보이며 주목을 끌었다. 2008년 그의 런던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기자에게 "상어를 그리려다가 진짜 상어를 썼고, 그 뒤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인체로 할 수 없는 작업을 동물로 대신해 유한한 삶 속 희망을 말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2008년 6월 런던 사무실에서 인터뷰 당시의 데미안 허스트. 사진을 찍자고 하자 선반 위에 놓인 작은 도트 페인팅을 집어들고 익살맞은 포즈를 취했다.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서 이 가짜 그림이 돌고 있는 걸 발견하고는 얼른 사서 내 서명을 했다”고 말했다. 런던=권근영 기자

2008년엔 화랑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근작들을 소더비 경매에서 직거래했다. 예술가가 2차 시장인 경매에서 자신의 작품을 직접 팔며 시장을 교란한다는 비판 속에도 1억1100만 파운드(약 2173억원)를 벌어들였다.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진 날이었다. 영국의 미술전문지 '아트리뷰'는 그를 세계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사 1위에 2005ㆍ2008년 두 차례 올렸다. 런던 올림픽이 열린 2012년 테이트 모던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었다. 죽은 동물을 포름알데히드 수조에 담은 '자연사' 연작부터, 인골에 다이아몬드를 가득 박은 '신의 사랑을 위하여' 등 1990년대 대표작을 발전 없이 그대로 늘어놓았다는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46만3000여명의 관객이 몰렸다. 이 미술관의 '마티스 피카소 전'(2002) 다음으로 많은 숫자였다. 그러나 자국의 화랑이 끌고, 미술관이 미는 '대표작가'로서의 위상은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상업 작가' '센세이셔널리즘'이라는 오명 속에 그는 미술관에서 진지하게 작품을 보여줄 기회를 잃어갔다. 지난해에는 2017년 새로 제작한 포름알데히드 작품을 1990년대의 원본처럼 보이게 미술관ㆍ갤러리에 전시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지난해 10월 파리 카르티에 재단 미술관에 전시된 데미안 허스트의 근작 '벚꽃' 연작을 보는 관람객들. AFP=연합뉴스
"왜 지금 서울에서 데미안 허스트일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국립현대미술관 김성희 관장은 지난 6일 "이단자ㆍ테러리스트라는 비판도 꾸준히 들어왔지만, 인간의 죽음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로질러 해체와 재구성을 거듭해 온 작가”라며 “국민이 해외의 큰 미술관에 나가서 봐야 하는 전시를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도 국립기관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지난달 마무리한 김창열 회고전을 예로 들며 “기획 당시에 나왔던 ‘물방울 그림으로 엄청나게 돈을 번 작가라는 것 외에 무슨 얘기가 있기에 국립기관에서 전시하냐’는 비판이 무색할 만큼 한 작가의 궤적을 통해 한국의 정서를 드러낸 전시로 각광받았다”며 “이번에도 기획의 묘를 발휘하겠다”고 덧붙였다.
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사업성과와 올해 계획을 발표하는 김성희 관장. 연합뉴스
그러나 한국 미술가 김창열의 진면목을 국립현대미술관이 발굴하는 것과 영국의 기관에서도 외면하는 데미안 허스트를 아시아 처음으로 끌어오는 것은 범주가 다르다. 관건은 철 지난 센세이셔널리즘의 나열을 넘어 데미안 허스트라는 이단아가 현대 미술에 어떤 흔적을 남겼으며, 이것이 지금 시점에서 얼마나 유효할까 보여줄 수 있느냐일 터.
지난해 7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론 뮤익'전 마지막날의 관람객들. 우상조 기자
데미안 허스트 전시에 책정된 예산은 30억원이다. 송수정 전시과장은 “해외 전시의 경우 예산의 70% 이상이 운송비다. 코로나 이후 늘어난 운송비를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53만명이 입장한 론 뮤익 전시의 입장료 수익은 25억원 선. 미술관은 올해 기획 전시의 입장료를 5000원에서 8000원으로 올렸다. 3월 데미안 허스트, 8월 서도호 전이 이에 해당한다. 기획전 외에 일반 전시 관람료는 2000원으로 그대로다.




권근영([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