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무총리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지난 5일 만남은 정치권에서 잔잔한 화제였다. 혁신당이 더불어민주당의 우당(友黨)이란 점을 고려하더라도, 총리와 소수 야당 대표의 별도 면담 자체가 이례적이어서다. 공개된 사진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선 채로 손을 꼭 잡고 있기도 했다.
김 총리와 조 대표의 면담은 오전 10시 30분부터 45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뤄졌다. 사후 보도자료에는 총리 소속 자문위원회인 사회대개혁위원회 구성과 활동에 관해 논의했다는 내용만 짤막하게 담겼지만, 두 사람은 이밖에 정치와 부동산 이슈에 관해서도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혁신당 고위 관계자는 “조 대표와 김 총리는 대학 시절부터 우정을 쌓아 온 사이”라며 “오래된 개인적 신뢰와 문재인 정부 국정 경험 등을 바탕으로 조 대표가 김 총리에게 여러 조언과 당부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혁신당 등에 따르면, 조 대표는 사전에 협의된 공식 의제에 관한 대화를 맺은 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을 언급했다고 한다. 같은 날 오전 공개된 에너지경제신문·리얼미터 여론조사(지난해 12월 29일부터 공휴일 제외 4일간 전국 유권자 2025명 대상 무선 자동응답조사)에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보다 0.9%포인트 오른 54.1%였다. 조 대표는 “문재인 정부 초기 지지율이 높았고 임기 마칠 때도 역대 최고(한국갤럽 45%)였지만,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니 모든 성과가 사라졌다”며 “지지율이 높으면 대통령에게 좋은 얘기만 하게 돼 있는데, 김 총리는 그러지 말고 잘 보좌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조 대표는 이어 “대통령이 아무리 잘한다고 하더라도 남은 임기 4년간 지지율이 유지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공과 과를 잘 복기하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힘만으로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견인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며 “나는 정당 대표이자 ‘레드팀’으로서 집권당이 하기 어려운 말을 할 테니, 혁신당이 제기하는 문제를 잘 살펴봐 달라. 넓고 크게 가자”는 취지로도 당부했다고 한다. 조 대표는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이에 김 총리는 “당연히 그렇게 할 생각”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실제 이날 면담에서 조 대표는 지난 4일 신년 기자회견 때 꺼낸 ▶고품질 공공임대주택 12만호 공급 ▶토지주택은행 설립 ▶신(新) 토지공개념 3법 입법 등 혁신당의 부동산 정책을 소개하며 “정부 차원에서 용산공원이나 서울공항 등을 공공임대주택 부지로 활용하는 문제에 대해 적극 검토해 달라. 민주당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다”고 하자, 김 총리는 “이미 내용을 알고 있다. 검토 중이니 추후 소통하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어쩌면 불편할 수 있었던 대화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오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두 사람의 오랜 인연이 있다. 김 총리(사회학)와 조 대표(법학)는 서울대 82학번 동기다. 김 총리는 총학생회장, 조 대표는 법대 학보사인 ‘피데스(FIDES)’ 편집장을 지냈다. 대학 시절 친분은 깊지 않았지만, 이후 꾸준히 교류하며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조 대표가 지난 8월 출소한 뒤 두 사람은 여러 채널로 소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사석에서는 서로 ‘김 총리’와 ‘조 대표’라고 부르면서도 반말과 경어를 섞어 쓴다고 한다.
김 총리는 일찍이 조 대표에게 정치 참여를 권유한 인물 중 한 명이다. 김 총리는 2012년 출간한 저서 『3승』에 조 대표에 관해 “정치와 학문의 경계선에 서 있지만, 대중의 눈으로 볼 때 사실상 정치 행위를 하고 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경계선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고 보다 깊숙이 뛰어들 것을 권하고 싶다. 그래야 진정한 내공이 축적되기 때문”이라고 썼다. 김 총리는 이 책을 조 대표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대 교수였던 조 대표는 정계 입문 제안을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고 한다.
김 총리는 지난해 1월 민주당 의원 중에선 처음으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조 대표를 면회했다. 두 사람은 조 대표가 검찰 수사를 받던 2020년 1월에도 함께 식사하면서 서로를 위로·격려했다고 한다. 당시 원외 인사였던 김 총리는 민주연구원장에서 물러난 뒤 4·15 총선(서울 영등포을) 출마 채비를 하며 18년 만의 원내 복귀를 노리고 있었다. 혁신당 관계자는 “두 사람은 정치 성향에선 다소 차이가 있지만, 품격 있는 정치를 지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