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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상은 밀라노, 설상은 어디서? 경기장으로 미리보는 동계올림픽

중앙일보

2026.01.09 16:00 2026.01.0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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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중심축을 바탕으로 개최 준비 작업을 이어왔다. 로이터=연합뉴스
알프스의 설원부터 로마시대를 대표하는 원형경기장까지, 역사·문화적 유산이 총동원된다. 다음달 6일 개막하는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은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이탈리아가 지닌 매력을 입체적으로 전달하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대회를 치를 여러 경기장들은 조직위원회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스토리를 담아낼 ‘그릇’으로 주목 받는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은 동·하계를 통틀어 사상 최초로 두 도시 이름을 병기하는 대회다. 새 경기장을 지어 환경을 훼손하고 천문학적 건설비를 쏟아 붓는 대신 이미 존재해 온 역사와 문화의 공간 위에 올림픽을 얹는 방식을 택했다.

기존 경기장 및 관련 시설을 최대한 재활용하되, 현대 올림픽 개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만 증·개축과 리모델링을 시행했다. 앞서 동계올림픽 두 차례, 하계올림픽 한 차례를 치른 이탈리아이기에 가능한 도전이기도 하다.

설상과 빙상을 각각 평창과 강릉에서 이원화 해 성공적으로 치른 평창올림픽은 이탈리아가 '두 도시 동계올림픽'을 구상하는데 결정적인 힌트 역할을 했다. 평창올림픽 폐회식 장면. AP=연합뉴스
흥미로운 건 빙상을 밀라노에서, 설상을 코르티나담페초에서 각각 치르는 이원화 방식이 지난 2018년 평창의 사례를 참고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당시 대회 명칭은 ‘평창올림픽’이었지만 설상은 평창과 정선에서, 빙상은 강릉에서 각각 진행해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다만 자동차로 최대 1시간 정도면 주요 경기장 간 이동이 가능했던 평창과 달리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의 거리는 420㎞에 이른다. 이번 대회 개최지를 한 도시로 특정할 수 없었던 이유다. 참고로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이탈리아와 경합한 스웨덴도 두 도시 공동 개최(스톡홀름·오레) 카드로 맞불을 놨다.

이탈리아 클럽축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 산 시로 스타디움에서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린다. AFP=연합뉴스
이번 대회에서 빙상의 중심지는 밀라노다. 개회식이 열리는 산시로 스타디움은 이탈리아 축구의 성지다. 밀라노를 연고로 하는 두 명문 클럽(AC밀란·인터밀란)의 안방이다. 이곳에선 대회 기간 중 성화가 활활 타오른다.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축구 전용 구장에서 열리는 게 어색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자연스런 선택이다. 그들에게 축구는 곧 문화고 역사다. 지역 연고 경기장은 도시의 얼굴이다.

폐회식은 베로나의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에서 치르기로 했다. 2000년 전 검투사가 목숨을 걸고 싸우던 공간에서 올림픽이 막을 내린다. 고대와 현대, 스포츠와 문화가 한 무대에서 교차하는 절정의 드라마가 이곳에서 완성된다. 베로나는 이번 올림픽의 두 개최지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의 중간 지점이라는 상징성도 있다.

동계올림픽 폐회식을 치를 베로나의 원형 경기장 내부 전경. AFP=연합뉴스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은 밀라노 도심에서 열린다. ‘올림픽 이후’를 고려해 신축 대신 기존 경기장을 리모델링해 건설 관련 비용을 대폭 줄였다. 대회가 끝나면 두 경기장은 지역민들이 활용하는 체육관으로 돌아간다. 밀라노는 패션과 금융의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시민들에겐 일상의 스포츠가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최근 완공이 늦어져 논란인 아이스하키 경기장(산타줄리아 아레나)은 드물게 신축을 결정한 케이스다. 이 또한 이유가 있다. 경기장이 들어설 산타줄리아 지역은 오랜 기간 산업지대였지만, 근래엔 대부분의 공장이 멈춰 활력을 잃은 동네였다. 새 경기장은 이곳을 스포츠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복합 지구로 바꾸려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상징물이다. 올림픽이라는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를 도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계기로 활용한 사례다.

겨울스포츠의 세계적인 중심지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한 코르티나담페초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설상 종목의 무대가 될 코르티나·담페초는 알프스 산자락을 타고 스키 리조트가 밀집한 대표적 겨울 휴양지다. 1956년에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곳이기도 하다. 알파인스키 경기를 치를 토파네 슬로프는 70년 전 동계올림픽을 치른 그 코스를 다시 쓴다. 자연을 바꾸지 않고 인간이 그 위에 적응한다는 철학을 담은 결정이다.

스노보드와 프리스타일 스키가 열릴 리비뇨는 ‘젊은이들의 공간’으로 주목 받는 곳이다. 면세 지역이면서 음악과 익스트림 스포츠가 공존하는 작은 산악 도시에 올림픽에서 가장 젊고 역동적인 종목을 배치한 건 ‘이곳에서만큼은 전통과 역사의 무게를 내려놓고 젊음을 만끽하라’는 조직위의 배려다.

작은 산악도시지만 음악과 익스트림 스포츠의 천국으로 불리는 리비뇨에서는 스노보드 등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종목들이 치러진다. 신화=연합뉴스
이번 대회 경기 장소 중 가장 논쟁적인 공간은 코르티나에 신축한 썰매 종목(봅슬레이·루지·스켈레톤) 전용 슬라이딩 센터다. 대회 조직위는 환경단체들의 극렬한 저항과 맞물려 해당 종목군을 알프스 산맥과 맞닿은 인접 국가에서 치르는 방안까지 고려했지만, 결국 고심 끝에 새로 지었다. 이곳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의 유산이자 세계적인 썰매 종목의 메카로 키워낸다는 청사진도 내놓았다.

스키점프와 노르딕스키, 크로스컨트리스키 등을 치를 발디피엠메는 이탈리아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성지이자 하이킹과 트래킹의 성지다. 앞서 여러 차례 세계선수권대회를 치르는 등 일찌감치 노르딕 종목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동계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인 종목’이라 불리는 노르딕 계열을 치르기에 더없이 자연스런 장소다.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의 동계올림픽 경기장들은 “올림픽을 위한 공간이 더 크고, 더 새롭고, 더 현대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감동적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대회 기간 중 이곳에서 선수들이 기록과 순위를 남기는 동안, 도시는 이번 세기와 그 다음까지 이어갈 새로운 역사와 이야기를 남긴다.
아이스하키 경기장 산타줄리아 아레나와 더불어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드물게 신축된 코르티나 슬라이딩 센터의 야경. 로이터=연합뉴스



송지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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