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후 7개월 동안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장은 12명이다. 인사가 지체된다는 평가를 받던 윤석열 정부는 같은 기간(219일) 32명을 임명했다.
중앙SUNDAY가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 알리오에 올라온 공공기관 344곳(부설기관 포함)을 분석한 결과 기관장 임기가 이미 만료됐지만 새로운 수장을 맞지 못한 곳은 88곳(25.6%)에 달했다. 이중 46곳(13.4%)은 기관장이 아예 공석이었고, 42곳(12.2%)은 후임 인선이 이뤄지지 않아 임기를 다 채운 기관장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새로 임명된 12명 중 유정복 한국상하수도협회장(지난해 7월), 박상진 산업은행장(9월), 송기도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황기연 한국수출입은행장, 이한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이상 11월), 김성주 국민연금공단이사장, 임진택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박성혁 한국관광공사 사장(이상 12월) 등 8명이 지난해 임기를 시작했다. 김현훈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 김성식 예금보험공사 사장, 김은경 서민금융진흥원장, 김종수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장 등 4명은 연초 들어 취임했다. 또 절반 이상(58.3%)이 이재명 대통령 측근이거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출신이다.
정권 교체기마다 보은 인사 논란이 있었지만 이번엔 현저한 인사 지체란 현상까지 벌어졌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보은 인사를 찾기 위해 인사를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알리오에 따르면 공공기관장 평균 연봉은 1억9116만원으로 장관급 공무원 연봉(1억4533만원)을 웃돈다. 현행법으로 임기가 보장되고 처우까지 파격적이다 보니 공공기관장은 ‘보은용’으로 탐나는 자리가 됐다.
이한주 이사장은 이 대통령의 기본소득·기본주택·기본금융 등 기본시리즈를 설계한 대표적인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이 이사장은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일 땐 경기연구원장을, 민주당 당대표일 땐 민주연구원장을 맡았다.
송기도 이사장과 김은경 원장은 이 대통령이 당대표였던 2023년 각각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장과 혁신위원장을 맡아 이 대통령의 당 공천·혁신 작업을 뒷받침했다. 당시 김 위원장의 노인폄하 발언이 논란이 돼 혁신위가 조기 해산되는 사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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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산하 10곳 ‘공석’
… 대통령은 웃어넘겼다
김성주 이사장도 민주당 재선 의원 출신이다. 그는 국민연금공단 역사상 처음으로 두 차례 이사장에 오른 인물이 됐다. 김종수 회장도 민주당 정책실장 출신이다. 김성식 사장은 이 대통령과 사시 28회 동기이면서 이 대통령의 경기지사 재임 시절 직권남용 혐의 관련 재판에서 변호인단으로 활동했다. 임진택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은 이 대통령의 경기지사 임기 말기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현재 리더십이 공백 상태인 88곳 가운데 25곳은 1년 넘게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 중이거나 후임자가 없어 전임자가 자리를 지키는 경우다. 2024년 12월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국내 14개 공항 안전을 총괄하는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1년 8개월째 공석이다.
부처별로 살펴보면 공공기관장 자리가 빈 곳은 산업통상부 산하가 11곳으로 가장 많았고, 국토교통부·문화체육관광부 10곳, 보건복지부 9곳 등이 뒤를 이었다. 정부 부처와 호흡을 맞춰 손발 역할을 해야 할 공공기관장 인선이 늦어지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 원전 수출 등 핵심 국정과제 추진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커지는 분위기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산자부나 국토부 산하 기관은 예산 규모도 크고, 그만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막대하다”며 “인선 지연은 곧 국민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계의 경우 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 때 이재석 예술의전당 사장 직무대행에게 “여기도 책임자 선정을 아직 못하고 있죠. 문제 없어요
?”라며 묻는 일도 있었다. “네, 잘 진행하고 있다”는 이 직무대행 답변에 이 대통령이 “없어도 되겠네요
? 사장
?”하며 웃어 넘겨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의 속은 타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현 정부에서 유독 공공기관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는 이유로는 이 대통령이 조기 대선을 통해 취임해 두어 달 가량인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라는 준비 기간이 없었다는 점이 지적된다. 각 부처 1급 공무원(실장급) 인사 역시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 청와대 인사검증에 과부하가 걸린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공공기관장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에 따라 각 공공기관 임원추천위원회가 복수 후보를 추천한다. 장관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주요 공공기관장의 경우엔 청와대의 추가적인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문성뿐만 아니라 현 정부 국정 운영 철학과의 궁합까지 따지다 보니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 직전 내정됐다가 1년 넘게 대통령 임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허상국 한전 KPS 사장 후보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당 관계자도 “정상적인 선거를 거쳐 정권이 교체된 게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의 철학을 정확히 이해하고 정책을 집행할 ‘우리 편’을 고르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이 지시한 공공기관 통폐합 작업이 전임 정부 출신 기관장을 ‘물갈이’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원 출신인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게 “3년이 돼가는데도 업무 파악도 정확히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질타한 것도 사퇴를 압박한 것이란 해석이다. 이 사장 임기는 올해 6월까지다.
공공기관장 낙하산·물갈이 인사가 반복될 때마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게 공운법을 개정해 기관장 임기를 대통령 임기와 일치시키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여당이 소급 적용을 주장하고, 이에 ‘찍어내기’ 논란을 우려한 야당이 맞서면서 국회 논의는 공전 중이다. 국회 관계자는 “원래 여당은 다 가지고 싶고, 야당은 하나라도 덜 주고 싶은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나마 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철도공사·한국수력원자력 등 20여 곳이 기관장 인선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일각에선 정치권 출신이 낙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가중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의 경우에도 최인호 전 의원이 5명 내외로 추려진 최종 적격 후보군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전문성이 담보된다면 대통령과 국정 철학을 공유해 온 인사들이 함께 가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며 “대통령이 전문성은 물론 조직 장악력까지 종합적으로 잘 판단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결격 사유를 걸러낼 인사 검증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