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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돈벼락 맞자 '부동산 쇼핑'…정의 외친 시민운동가의 타락

중앙일보

2026.01.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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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아메리칸 오딧세이] 미국 흑인 시민단체의 민낯

2020년 5월 경찰에 의해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이와 관련한 대규모 폭력시위가 LA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김상진 기자
정의로운 시민운동가도 돈을 거머쥐는 순간 타락의 길에 들어선다. 흑인 운동단체 BLM(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이 소중하다)이 그런 모습이다. 거액의 기부금이 답지하자 순수함은 탁하게 흐려졌다.

BLM은 2013년 흑인 청소년 트레이번 마틴이 플로리다에서 마을 자율 방범대의 조지 짐머먼에게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출발했다. 패트리스 컬러스(42), 알리샤 가자(45), 오팔 토메티(41)라는 ‘훈련받은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세 흑인 여성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설립했다. 그 뒤 이름이 알려지자 토메티는 2015년, 가자는 2017년 각각 BLM을 떠나 개인 활동에 나섰다. 그 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피살 이후 유례 없는 기부금이 쏟아져 들어올 때까지 BLM은 컬러스 1인 체제였다.

돈을 혼자 주무르다 보면 떡고물이 손에 안 묻을 수 없다. 컬러스는 2016년 LA 잉글우드에서 침실 3개가 딸린 51만 달러짜리 주택을 구입했다. 2년 뒤엔 사우스 LA에서 침실 4개의 집을 59만 달러에 사들였다.

그의 부동산 쇼핑은 기부금 돈벼락을 맞은 2020년부터 판이 커졌다. 그가 세운 BLM재단은 2020년 10월 LA 스튜디오시티의 침실 6개짜리 저택을 600만 달러에 매입했다. 이 지역 주택 중간가격의 3배가 넘는다. 면적 600㎡에 차량 20대의 주차공간을 갖췄다. 과거 험프리 보가트와 마릴린 먼로가 손님으로 이곳에 머물렀던 일화도 있다. BLM은 이 집을 유한회사 명의로 등기해 누가 실소유주인지 알기 어렵게 했다. 사적 이익과의 경계도 흐릿했다. 컬러스는 이곳을 아들 생일파티, 영상 촬영 등에 사용했다. 거리에선 정의를 외치고, 언덕 위 저택에선 와인 잔을 부딪친 것이다.

또 토론토에선 630만 달러 규모의 저택을, 조지아주 코니어스에선 경비행기 격납고와 활주로를 둔 3.2에이커(1만2950㎡)의 전원주택을 42만 달러에 구입했다. LA 인근 말리부에도 침실 3개와 별채가 딸린 140만 달러짜리 집을 추가로 사들였다.

기부금 3년새 9076만 달러→334만 달러로
2020년 BLM이 600만 달러에 구입한 LA 저택에서 공동 창립자 패트리스 컬러스(왼쪽)와 알리샤 가자(가운데), 그리고 LA지부 창립자 멜리나 압둘라가 성공을 자축하며 건배하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2022년 4월 BLM의 부동산 매입을 처음 폭로한 이는 뉴욕매거진의 탐사보도 기자 션 캠벨이었다. 해명은 짧고, 역공은 빨랐다. 비영리단체는 흔히 부동산에 투자하는데 유독 BLM의 주택 구입을 문제 삼는 건 인종차별이다, 하며 컬러스는 맞섰다. 이게 ‘훈련받은 사회주의자’가 할 얘기인가. 공교롭게도 캠벨은 흑인이었다.

같은 흑인 사회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경찰 폭력에 아들을 잃은 일부 유가족들이 “더 이상 내 아들을 모금에 이용하지 말라”고 BLM에 요구했다. BLM뉴욕의 설립자 호크 뉴섬은 “운동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만든다”며 외부감사를 주장했다. 흑인 래퍼 릴 야티는 유튜브에 나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BLM은 사기다.”

보수 언론들은 흑인 사망 사건 때마다 거리로 몰려나오는 BLM의 저의를 꼬집었다. 워싱턴 이그재미너는 2024년 흑인 죽음과 관련한 BLM 시위에 “도대체 집을 몇 채나 더 사려는 건가”라며 냉소했다.

BLM의 취약한 지배구조와 불투명한 회계는 자주 도마 위에 올랐다. 컬러스는 가족이 운영하는 기업 두 곳에 수백만 달러를 용역비로 지급했다. 상근 직원 몇 명 안 되는 단체의 운영비가 연간 400만 달러에 이르고, 나중에 환입하긴 했지만 컬러스의 자가용 제트기 이용비도 7만3500달러에 달했다. 비영리단체의 재정 투명성을 분석해 매년 A~F 등급을 매기는 민간 감시기구 채리티웟치는 지난해 BLM에게 ‘ ?’ 등급을 줬다. 장부의 숫자를 믿을 수 없어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 전엔 D 등급이었다.

돈을 둘러싼 내분도 벌어졌다. 2020년 당시 BLM은 세법상 면세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중간에 적법한 제3의 비영리단체를 내세워 돈을 받고, 나중에 넘겨받기로 했다. 이후 누가 이 돈을 받느냐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고, 결국 BLM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1000만 달러를 놓고 컬러스의 BLM재단과 멜리나 압둘라(53)의 BLM그래스루츠가 소송을 벌였다. 2023년 BLM재단의 승소로 마무리됐지만 균열은 되돌릴 수 없었다.

BLM 본부의 난맥상은 지역 지부로도 전염된 듯했다. 지난해 12월 11일 BLM오클라호마시티 사무총장 타셸라딕커슨이 돈세탁과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2020~25년 흑인 피의자들의 보석금으로 쓰라고 기부받은 560만 달러 중 315만 달러를 착복했다. 그 돈으로 집을 6채나 구입하고, 호화 해외여행과 쇼핑 등에 썼다고 한다. 2024년 10월 오하이오에선 지역 BLM 운동가 타이리 페이지가 기부금 45만 달러를 유흥비 등에 쓰다 붙잡혀 최근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보스턴에서도 2022년 흑인 운동가 부부가 BLM이라는 이름을 붙인 개인단체로 기부금을 모아 18만5000달러를 유용하다 덜미를 잡혔다. 이쯤 되면 떡고물 묻히는 수준을 넘어 떡판 자체를 쓱싹한 것 아닌가.

BLM의 성장은 마치 스타트업의 성공 스토리를 연상케 한다. 비즈니스 모델에 운과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특히 2011년 월가 점령 시위 이후 양극화에 따른 분노가 대중의 심리 속에 뭉글뭉글 피어오른 게 중요한 배경이 됐다. 분노라는 인화물질에 불을 댕긴 게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었다. 그 불길이 불매운동과 직원 반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기업들은 BLM 기부 행렬에 줄을 섰다. 윤리적 면죄부를 받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애플·구글·아마존·나이키·뱅크오브아메리카·JP모건 등 미국의 대표 기업과 금융회사가 수천만 달러의 지원을 약속하거나 실행했다.

그러다 투명성 시비가 끊이지 않자 BLM의 재정은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BLM이 2024년 국세청에 제출한 재정 보고서에 따르면 2020~23년 수입은 기부금 9410만 달러에 이자와 배당 등을 포함해 총 9872만 달러였다. 기부금은 2020년 한 해에 7687만 달러가 들어왔고, 그 뒤엔 927만 달러(2021), 462만 달러(2022), 334만 달러(2023)로 매년 감소했다. 아직 2500만 달러 이상 남았지만 2022년 이후 수입보다 지출이 훨씬 많아졌다. 대중의 신뢰가 묽어진 탓이 크다. 퓨리서치센터의 2023년 조사에서 미국인의 57%는 “BLM이 흑인의 삶 개선에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흑인 엘리트의 기득권 도구로 변질
2020년 6월 LA 한인타운에서 열린 한인단체 연합의 BLM 지지 시위. 김상진 기자
돌이켜 보면 BLM 운동은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가 말한 상징자본의 작동방식을 여실히 드러냈다. 상징 자본가들은 대중이 인정한 도덕적 권위를 바탕으로 돈과 힘을 거머쥔다. 그 과정에서 사회정의 담론을 무기로 경쟁자와 반대편을 배제하곤 한다.

뭔가 잘못해 내부 비판이 나오면 피해자임을 자처하며 역공하는 게 그들의 습성이다. BLM 진영이 이럴 때 상투적으로 쓰는 게 ‘다인종적 백인성(multiracial whiteness)’이란 용어다. 쉽게 말해 유색인종인 주제에 백인이 하듯이 흑인을 우습게 여기는 인종차별주의자를 뜻한다. 공화당 소속 흑인 정치인, BLM을 비판하는 흑인 학자나 언론인, 인종 쿼터 입학제에 반대하는 아시안들이 그에 해당한다. 상대를 가해자, 자신을 피해자 구도에 놓고 비판을 틀어막는다는 면에서 신좌파의 대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1898~1979)의 ‘억압적 관용’을 빼다 박았다.

그들의 피해자 서사에도 서열이 있다. 흑백 다인종 출신의 사회학자 무사 알가르비는 맨 위에 흑인, 이어 성소수자와 무슬림, 최하위엔 아시안과 유대인이 위치한다고 본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경찰이 흑인을 쏘면 전국에서 난리가 나지만 아시안을 쏘면 뉴스 몇 줄로 끝난다. 2024년 LA에서 한국인 양용이 경관에게 피살된 사건이 그 사례다. 보상과 처벌은 2년이 되도록 이뤄지지 않았다.

암스테르담대의 엔조 로시와 조지타운대의 올루페미 타이워 교수는 2020년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지난 50년 간 여성과 소수인종의 상위계층 진입을 가로막던 공식적 장벽은 대부분 해체됐다. 하지만 혜택은 그 집단 내의 소수 엘리트에게 돌아갔고, 정작 취약한 이들에겐 변화가 없었다.” BLM이야말로 그 혜택을 제대로 본 엘리트였다. 진보의 과실이란 위로 맺힌 채 아래로는 내려가지 못하는가.

정의는 신봉만 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구현할 가치다. BLM은 정의 담론과 이념적 구호, 그리고 시위 현장에서의 물리력 행사에 머물고 있다. 그래야 기부금이 더 들어오기 때문일까. 개인 재산 불리는 것만큼 공적 가치에 신경 썼다면 BLM은 역사에 남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흑인 엘리트의 기득권 도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커졌다.

◆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남윤호 미주중앙일보 대표가 현지에서 전합니다.

남윤호 미주중앙일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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