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한국이 지난해 9월과 지난 4일에 무인기를 침투시켰다고 주장하면서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국방부는 곧바로 북한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시기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로, 지난 7일 이 대통령이 직접 “만나라, 뽀재명과 뽀정은”이라며 남북대화 의지를 밝힌 지 사흘 만에 이런 입장을 내놔 의도가 주목된다. 이는 지난 5일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어지는 한·중 관계 개선 분위기에 견제구를 날린 것으로도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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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무인기 침투…대가 각오해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10일 관영매체를 통해 '한국은 무인기에 의한 주권 침해 도발을 또다시 감행한 데 대하여 대가를 각오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대변인 성명을 공개했다.
대변인은 "지난 1월 4일 국경 대공 감시 근무를 수행하던 우리 구분대들은 인천시 강화군 송해면 하도리 일대 상공에서 북쪽 방향으로 이동하는 공중목표를 포착하고 추적"했다면서 "우리 측 영공 8㎞계선까지 전술적으로 침입시킨 다음 특수한 전자전 자산들로 공격하여 개성시 개풍구역 묵산리 101.5고지로부터 1200m 떨어진 지점에 강제추락"시겼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무인기 침투 사실을 발표한 시점에 주목했다. 직전 이 대통령은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한반도 문제에서 '중재' 역할을 요청했다. 귀국길에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어깨동무한 펭귄 사진과 함께 자신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펭귄 캐릭터 ‘뽀로로’에 비유하는 글을 올리며 대화 의지를 드러냈다. “이 한반도에도 언젠가는 혼란과 적대의 비정상이 극복되고, 서로 존중하며 공존공영하는 날이 올 것”이라면서다.
하지만 북한이 직후 한국이 무인기를 보냈다며 공개 비난에 나선 건 이재명 정부의 화해 메시지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중 관계 개선이 북·중 관계와 북핵 문제에 미칠 영향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내란특검이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을 일반이적 등 혐의로 기소하며 12·3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평양에 무인기를 투입했다고 공식화했을 때도 침묵하다 지금 무인기 비방전에 나선 것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이중성을 부각해 대화 명분을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의 '평화 중재' 프레임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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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北 주장 일자에 무인기 운용 안 해
국방부는 곧바로 북 측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우리 군이 북한이 주장하는 일자에 무인기를 운용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 사안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으며 세부 사항은 관련 기관에서 추가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무인기를 운용한 사실이 없다"며 "우리 군이 보유한 기종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홍철 국방부 정책실장은 이날 오후 입장발표를 통해 "1차 조사결과 우리 군은 해당 무인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북한이 발표한 일자의 해당 시간대에 무인기를 운용한 사실도 없다"며 "민간 영역에서 무인기를 운용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부 유관기관과 협조하여 철저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북한을 도발하거나 자극할 의도가 없으며, 남북간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쌓아가기 위해 실질적인 조치와 노력들을 지속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군은 북한이 주장하는 무인기는 민간에서 보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는 기류다. 북한이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한 무인기 사진을 보면 군용이 아니라 민간에서 운용하는 것과 유사해 보인다는 분석이 다수다. 이 대통령이 철저한 조사를 지시한 만큼 북한이 주장하는 시점과 이륙 지점 등을 토대로 역추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관상 중국 스카이워커 테크놀로지사의 '스카이워커 타이탄 2160' 모델과 일치한다"며 "동호인들의 취미나 상용·산업용으로 판매되는 제품"이라고 평가했다. 취미용 혹은 '농업·측량용'으로 분류돼 군사 물자 수출 통제 대상(전략물자)에서도 제외되는 제품이라는 설명이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도 "온라인에서도 누구든 쉽게 구매해 제조할 수 있는 기종"이라며 "상용 부품을 조립해 같은 형태로 여러 대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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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기에 감시용 장비 설치"
북한은 추락한 무인기에 감시용 장비가 설치돼 있었단 주장도 내놨다. 해당 무인기가 "지난 4일 12시 50분경 이륙한 후 개성시 개풍구역, 황해북도 평산군, 금천군 일대를 지나 다시 개성시 개풍구역, 판문구역, 장풍군을 거쳐 한국의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까지 총 156㎞의 거리를 100~300m의 고도에서 50㎞/h의 속도로 3시간 10분 동안 비행"했다고 밝히면서다.
아울러 무인기의 촬영 기록장치에는 "2대의 촬영기로 추락 전까지 우리 지역을 촬영한 6분 59초, 6분 58초 분량의 영상 자료들이 기록되어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대변인은 "영상 자료들은 무인기가 우리 지역에 대한 감시 정찰을 목적으로 공화국 영공에 침입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라고 비난했다.
윤석열 정부의 무인기 도발을 비판해온 이재명 정부가 같은 수법을 썼다는 주장이다. 새삼 지난해 9월에도 무인기가 침입했다는 사실까지 이번에 꺼내든 것도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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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에도 무인기 침입"
북한은 "서울의 불량배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국경 부근에서 한국 것들의 무인기 도발 행위는 계속됐다"며 "지난해 9월27일 11시15분경 한국의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일대에서 이륙한 적 무인기는 우리 측 지역 황해북도 평산군 일대 상공에까지 침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때 추락한 무인기도 이번에 추락한 무인기와 마찬가지로 고정익 소형무인기로서 500m 이하의 고도에서 최대 6시간 동안 비행할 수 있고 동체 밑부분에 설치된 고해상도 광학 촬영기로 지상 대상물들을 촬영할 수 있는 명백한 감시 정찰 수단이었다"고 덧붙였다.
다만 홍민 연구위원은 "북한이 공개한 영상에 담긴 황해북도 평산이나 개성공업지구·개성역 일대는 정보 가치가 있거나 군사 표적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이미 고해상도 라이브 피드(Live Feed)를 가진 한국군이, 녹화된 메모리 카드를 회수해야만 하는 구형 드론을 보냈다는 건 성립되기 어려운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국방성 대변인은 "앞에서는 우리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바늘 끝만 한 구멍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우리에 대한 도발 행위를 멈추지 않는 것은 한국이라는 정체에 대한 적대적인 인식을 가지도록 하는 데 또다시 도움을 주었다"며 "한국이라는 정체는 변할 수 없는 가장 적대적인 우리의 적이고 덤벼들면 반드시 붕괴시킬 대상"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한국이 무인기를 침투시켰다는 주장을 대남 도발의 명분과 대남 단절 정책 강화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이는 대목이다. 북한은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도 이번 성명을 2면 상단에 배치하는 식으로 소개했다.
임을출 교수는 "해당 무인기가 한국군의 장비가 집중된 지역을 통과했다는 점을 부각해 '민간단체의 소행'이라는 변명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발생할 자신들의 군사적 보복 조치에 대한 '정당한 명분'을 축적하려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