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안 팔린다.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특히 2030의 술 소비가 빠르게 감소하는 중이다. 이에 주류업계는 역성장 중이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 감소가 직접적인 영향이다.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주류 소비문화 변화도 더해졌다.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 패턴도 술 소비가 줄어든 원인으로 꼽힌다. 주류 소비 감소는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2024년 국내 희석식 소주 출고량은 전년 대비 3.4% 감소한 81만 5712㎘(킬로리터)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맥주 출하량은 163만 7210㎘ 로 전년 대비 3%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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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지 않는 술 전성시대
비주류가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무알코올 주류가 알코올 주류를 대체하는 변화는 뚜렷하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무알코올 주류는 지난해 40여종을 넘어섰다. 심지어 무알코올 와인까지 판매되는 중이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해 연말 무알코올 와인 생산을 승인했다. 그동안 이탈리아 정부는 무알코올 와인에 대해 세금을 매길 수 있는 법령에 서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저항했으나 실패했다. 그동안 유럽연합(EU)은 2021년부터 알코올을 제거한 와인도 와인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탈리아만 무알코올 와인 생산 승인에 소극적이었다. 이탈리아 정부의 공식 입장은 “와인 문화가 변질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 와인 업계는 이번 조치를 두 손을 들고 반겼다. 와인 업계는 성명서를 내고 “알코올 함량이 낮은 와인에 대한 수요 증가가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장기적인 변화”라며 “정부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와인의 발상지인 유럽에서도 무알코올 와인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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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의 나라’도 맥주 소비 줄어
‘맥주의 나라’로 불리는 독일에서도 최근 몇 년간 맥주 소비가 감소하고 있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독일 내 맥주 판매량은 약 68억 리터로 전년 대비 약 2% 감소했다. 맥주 소비 감소는 장기적인 흐름이다. 2024년 맥주 판매량을 2014년과 비교하면 13.7%, 약 13억 리터가 줄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프랑크푸르트무역관은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가 2024년 독일에서 열렸음에도 맥주 소비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건 장기적인 소비 감소세를 뒤집지 못했다는 뜻”이라며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나 일시적 요인이 아니라 독일 소비자들의 음주 문화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독일 내 무알코올 맥주 판매는 뚜렷한 성장세를 보인다. 독일에선 무알코올 맥주가 일상에서 소비하는 건강한 음료라는 인식이 퍼지며 2030을 중심으로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독일 양조장은 무알코올 맥주 제품을 내놓으며 관련 투자도 확대하는 중이다. 2014년 3억 리터였던 독일 내 무알코올 맥주 생산량은 2024년에는 약 6억 리터로 증가했다.
독일 정부는 무알코올 맥주 생산을 장려하고 있다. 홀거 아이힐레 독일 양조협회 대표는 “독일이 무알코올 맥주 생산에 있어 전 세계 선두에 서 있다. 해당 제품군의 성장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일 양조협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800종이 넘는 무알코올 맥주가 판매되고 있다. 무알코올 맥주 서울브리즈를 생산하는 최민희 대표는 “독일 맥주 시장은 품질이 상향 평준화돼 있어 무알코올 맥주가 단순한 맥주 대체재가 아닌 차별화된 맛과 콘셉트로 경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무알코올 맥주는 일반 맥주 대비 맛과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발효 공정 개선, 특수 효모의 활용, 저온 처리 기술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풍미와 향이 높아졌다. 기술 발전으로 라거뿐만 아니라 밀 맥주, 에일 맥주 등 다양한 무알코올 맥주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최근에는 레몬과 자몽 등 과일 향을 가미한 제품들이 인기를 끌며 무알코올 맥주는 독립적인 제품군으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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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지는 맥주도 소주도 아닌 무알코올
국내 주류업계는 무알코올 제품을 공격적으로 키우고 있다. 오비맥주는 최근 카스 올제로 등 자사 무알코올 제품을 모은 오비맥주 공식 스마트스토어를 개설하고 2030 공략에 나섰다. 하이네켄 0.0, 기네스 0.0, 버드와이저 제로 등 세계적인 맥주 제조사들도 간판 브랜드의 무알코올 버전을 속속 내놓고 있다.
웅진식품은 지난해 연말 무알코올 와인 제품을 출시했다. 웅진식품은 “무알코올 맥주와 하이볼 등 무알코올 음료가 다양해지는 흐름 속에서 처음으로 무알코올 와인 카테고리에 도전하며 라인업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신제품은 레드와인맛과 화이트와인맛 2종으로 구성된다.
주류 업계가 무알코올 제품에 진심인 건 실적 부진 때문이다. 알코올 판매 감소로 국내 주류 기업은 실적에 비상등이 들어왔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이 전년 대비 2.2% 줄어든 1조9289억원에 그쳤다. 롯데칠성음료 주류부문도 같은 기간 매출이 7% 넘게 빠졌다. 분기 실적을 발표하지 않는 오비맥주도 시장에선 실적 부진을 예상한다.
올해 주류업계 최대 격전지는 맥주도 소주도 아닌 무알코올이 될 전망이다. 국내 무알코올 맥주 시장 1위는 하이트진로의 ‘하이트 0.00’이다. 카스는 소량의 알코올을 함유한 맥주 카스 0.0을 전면에 내세웠으나 최근 무알코올 맥주인 카스 올 제로를 새롭게 출시하며 2030 잡기에 나섰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며 알코올 섭취에 대한 경각심도 증가했다”며 “무알코올 주류는 건강을 지키면서도 술자리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