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대학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가을과 겨울 캠퍼스를 달구던 풋볼의 열기를 기억할 것이다. 특히 남동부 컨퍼런스(SEC)의 위세는 공포에 가까웠다. 2006년부터 2022년까지 17개 시즌 중 무려 13번을 SEC 팀들이 제패했다. 앨라배마와 조지아 등 SEC 소속 팀들은 최고 유망주들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후보 선수들의 실력마저 출중해 부상 선수가 발생해도 전력에 차질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 로즈볼을 비롯한 주요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SEC의 이름은 실종됐다. 농구 명문이지만 풋볼은 컨퍼런스 하위권이었던 빅텐(Big Ten)의 인디애나 대학교와, 오랜 침체기를 겪었던 ACC(애틀랜틱 코스트 컨퍼런스)의 강자 마이애미 대학교(플로리다주)가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에 SEC 팀이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건 2005년 시즌 이후 21년 만에 처음이다. 대학 풋볼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SEC는 이번 시즌 볼 게임에서 4승 9패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남겼다.
인디애나의 돌풍은 커트 시그네티 감독의 부임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시그네티 감독의 전술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토양은 NIL(Name, Image, Likeness)과 포털(Transfer Portal)이라는 새로운 제도였다.
미국 대학 스포츠는 2021년 이전까지 '아마추어리즘'이라는 명분 아래 선수가 자신의 이름으로 단 1달러도 버는 것을 금지했다. 수만 명의 관중이 입장료를 내고 학교는 수천억 원의 중계권료를 챙기지만, 정작 주인공인 선수는 장학금과 식비 외에 손에 쥐는 것이 없었다.
NIL은 선수들이 자신의 성명과 이미지, 선호도를 활용해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한 제도다. 실질적으로는 팀의 동문 재단(콜렉티브) 등이 선수들과 합법적인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프로 선수처럼 계약금과 연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제도 도입 이전 SEC의 독주는 순수한 실력만으로 쌓아 올린 것이 아니었다. 남부 대학들은 규정의 사각지대를 파고드는 공격적인 불법 스카우트를 마다하지 않았다. 에드 오르제론 전 LSU 감독은 《디 애슬래틱》에 “이제는 돈을 들고 정문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엔 뒷문으로 몰래 들어갔다는 함의다. 한 빅텐 소속 감독은 “모든 팀이 선수들에게 돈을 줄 수 있게 되자 경쟁이 즉시 평준화됐다. 그들이 부인하고 싶어도 이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오히려 북부와 동부 명문대들이 유리해졌다는 시각도 있다. 막강한 자본력을 가진 동문 네트워크와 깨끗한 이미지를 보유한 북부·동부 명문대들은 음성적인 뒷돈보다 법적으로 보장된 투명한 계약을 선호하는 스포츠 인재들을 불러들이는 원동력이 됐다. 탄탄한 재정과 사회적 영향력을 갖춘 북동부 명문가들로 인재들의 발길이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전학 자유 제도인 포털은 인재 독점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과거에는 전학 시 1년을 쉬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유망주들이 앨라배마 같은 풋볼 명문대의 벤치를 지키는 쪽을 택하곤 했다.
이제는 다르다. 더 많은 출전 기회와 유리한 NIL 조건을 찾아 언제든 팀을 옮길 수 있게 되자, 인디애나나 마이애미 같은 팀들은 포털을 통해 즉시 전력감을 수혈하며 단기간에 우승권 전력을 구축했다. 나이키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자본 제국'이라 불리던 오리건 대학이 인디애나의 조직력 앞에 무릎을 꿇은 것도 이러한 인재 분산의 결과다.
변화는 풋볼을 넘어 농구, 야구, 골프 등 미국 대학 스포츠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과거처럼 명성이나 불투명한 관행이 승리를 보장하던 시대는 끝났다. 대학 스포츠는 이제 선수 개개인이 주체로 올라서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했다.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진학하는 빅텐이나 ACC 출신들에겐 그동안 기울어져 있던 운동장이 마침내 평평해졌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 될 수 있다.
※바로잡습니다. 기사 본문 중 결승에 진출한 마이애미 대학교를 '오하이오주(MAC 컨퍼런스)' 소재 학교로 표기했으나, 플로리다주 코럴 게이블스에 위치한 ACC(애틀랜틱 코스트 컨퍼런스) 소속 마이애미 대학교(University of Miami)이기에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