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은 인공지능(AI)의 무대가 달라졌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대화형 AI와 개념 시연 중심의 전시 대신, 실제 산업 현장에 즉시 투입 가능한 기술과 제품이 전면에 등장했다. 관람객들의 질문 역시 “얼마나 똑똑한가”에서 “언제, 어디에 쓸 수 있나”로 옮겨갔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AI와 로봇의 결합 방식이다. 두산은 현장 작업자를 지원하는 음성 기반 AI와 협동 로봇을 결합한 솔루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두산밥캣은 작업 현장에서 장비 상태를 음성으로 확인하고 정비를 안내하는 ‘잡사이트 컴패니언’을, 두산로보틱스는 AI와 3D 비전 기술을 결합해 별도 코딩 없이 작업이 가능한 ‘스캔앤고’를 시연했다. AI를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일을 돕는 도구’로 재정의한 셈이다.
중국 기업들은 생활 밀착형 로봇으로 존재감을 키웠다. 스위치봇(SwitchBot)은 테니스 연습용 로봇 ‘에이스메이트’를 공개했다. 테니스공을 자동으로 받아 다시 발사하는 구조로, 실제 사람과 연습하는 상황을 구현했다. 루미스타(Lumistar)는 농구 슈팅과 리바운드를 반복 연습할 수 있는 로봇 ‘캐리(Carry)’를 선보였다. 단순 오락용이 아니라 반복 훈련과 코칭을 염두에 둔 설계라는 점에서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청소 로봇도 한층 현실적인 모습으로 진화했다. 싱가포르의 프라이메크 AI(Primech AI)는 화장실 청소로봇 ‘히트론(Hytron)’을 공개했다. 로봇 팔을 탑재해 변기와 세면대 등 형태가 다른 설비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고, 호텔과 공공시설 등 실제 도입 시장을 명확히 겨냥했다. 전시장에서는 “언제 납품할 수 있는지” 질문이 잇따랐다.
가전 전시의 성격도 달라졌다. LG전자는 휴머노이드형 홈로봇 ‘LG 클로이드(LG CLOiD)’를 전면에 내세우며 가전·서비스 로봇 사업 확대를 공식화했다. 가전을 단일 제품이 아니라 AI 기반 서비스 플랫폼으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위아는 차량 하부를 적외선으로 데우는 ‘시트 하단 워머’를 공개했다. 전기차 전용 기술로, 기존 시트 발열의 사각지대를 보완한 실사용 중심 아이디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생활 속 아이디어 제품들도 곳곳에서 눈길을 끌었다. 미국 스타트업 아이폴리쉬(iPolish)는 전기를 가하면 색이 바뀌는 디지털 네일아트를 선보였고, 독일의 글뤽스카인드(GlüxKind)는 사용자를 따라 움직이는 자율주행 유모차 ‘로사(Rosa)’를 공개했다. 중국 소일테크(SoilTech)는 토양 상태를 센서로 측정해 캐릭터로 보여주는 반려식물 관리 기기를 전시하며 젊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전시장 분위기 역시 이전과는 달랐다. 대형 퍼포먼스와 쇼맨십이 줄어들고, 부스 회의 공간에서 실제 도입 시점과 단가, 공급 조건을 묻는 실무 논의가 이어졌다. 단순 관람객보다 구매 담당자와 파트너를 겨냥한 전시 구성이 늘어난 점도 특징이다. 한 국내 기업 관계자는 “이번 CES는 미래를 상상하는 전시라기보다, 당장 현장에 쓸 수 있는지를 따지는 자리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