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년 만에 감소하며 3만6000달러대에 턱걸이할 전망이다. 더딘 성장세와 원화가치 하락의 영향이다. 같은 기간 대만은 압도적인 반도체 수출 경쟁력을 앞세워 GDP 규모에서 한국을 추월했다. 올해는 1인당 4만 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11일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의 달러 환산 명목 GDP는 전년보다 0.5% 감소한 1조8662억 달러로 추산됐다. 명목 GDP가 줄어든 건 2022년(1조7987억 달러) 이후 3년 만이다. 이에 따라 1인당 GDP도 3만6107달러로 전년보다 0.3%(116달러)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성장률 전망치(명목 GDP 기준 3.8%)를 토대로 산출한 지난해 명목 GDP에 지난해 평균 달러 대비 원화가치(1422.16원)를 대입한 뒤 총인구(5168만4564명)로 나눈 값이다.
한국의 1인당 GDP는 2016년 처음 3만 달러를 넘어섰다. 이후 2018년 3만5359달러까지 늘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영향으로 2년 연속 감소해 2020년 3만3652달러까지 줄었다. 2021년 경기 부양책 등의 영향으로 반짝 증가했다가 2022년 다시 줄었고, 이후 2024년까지 상승하다 3년 만에 감소로 돌아선 것이다.
가장 큰 요인은 성장 둔화다.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2022년 이후 4년 연속 3%에 못 미치는 저성장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는 1.0%에 그쳐 2020년(-0.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원화가치가 떨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달러 대비 원화가치는 2024년 평균(달러당 1363.98원)보다 58.18원(4.3%) 하락했다. 원화가치 하락세가 상당 기간 이어지면서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원화 기준 GDP는 28.9% 커졌지만, 달러 환산 GDP는 7% 상승하는 데 그쳤다.
한국이 뒷걸음질을 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상대로 대만의 추월도 현실화할 전망이다. IMF는 지난해 10월 한국의 1인당 GDP가 2024년 세계 34위에서 2025년 37위로 주저앉고, 대만은 38위에서 35위로 올라설 것으로 내다봤다. 대만 통계청이 전망한 2025년 대만의 1인당 GDP는 3만8748달러다. 예상대로라면 한국은 지난 2003년 1만5211달러로 대만(1만441달러)을 제친 후 22년 만에 처음으로 대만에 역전을 허용한다.
1인당 GDP 순위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은 인구다. 대만(약 2340만명)보다 인구가 2.2배 많은 한국은 순위 싸움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순위가 뒤졌다는 사실보다는 대만의 1인당 GDP 상승이 탄탄한 성장세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만 경제 상승세는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를 앞세운 수출 호조가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해 대만 수출액은 6407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4년보다 34.9%나 급증했다. 규모로는 한국도 역대 최대치(7097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연간 수출 증가액만 보면 대만(1658억 달러)이 한국(261억 달러)이 압도한다. 이에 따라 한국 수출액 대비 대만 수출액 비중도 2024년 69.5%에서 2025년 90.3%까지 커졌다. 대만의 경제 규모가 한국의 절반 정도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만의 약진은 더 두드러진다.
전체 GDP의 67.2%를 차지하는 수출이 날개를 달면서 지난해 대만의 실질 GDP 성장률은 7.4%에 달할 전망이다.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붐을 바탕으로 올해도 전망은 밝다. 주요 해외 투자은행(IB) 8곳의 올해 대만 GDP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4.0%다. 기록적인 호황을 누린 2025년의 기저효과로 감속은 불가피하지만, 여전히 한국(2.0%, 정부 전망치)을 앞설 게 유력하다.
이에 따라 대만 통계청은 2026년 1인당 GDP를 4만921달러로 예상했다. 한국보다 먼저 4만 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다. 원화가치가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고, 정부 전망대로 성장할 경우 한국의 올해 1인당 GDP는 3만7932달러로 추산된다. 지난해보다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1인당 GDP 역전은 원화가치 하락의 영향이 크고, 반도체 착시 또한 반영돼 있으므로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나 기업의 투자 전략 등 최근 대만의 상승세에 깔린 긍정적인 요인들을 제대로 분석하고,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