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개입과 그린란드 확보 발언, 끝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휘 아래 고조되고 있는 지정학적 긴장이 방산주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는 물론 미국ㆍ유럽 전반에서 방산주 랠리로 이어지고 있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주 후반부 코스피 상승세의 중심에는 방산주가 있다. 코스피가 종가 기준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9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 거래일 대비 11.4% 급등했고, 장중 신고가(121만9000원)를 썼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만 30% 가까이 상승했다. 9일 한화시스템은 27.5% 치솟았고 한국항공우주(4.9%), 현대로템(3.8%) 등도 오름세를 탔다. 이날 방산주가 포함된 운송장비ㆍ부품 업종은 6.2% 올랐다.
이날 강세의 직접적인 계기는 미국의 국방비 확대 신호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연방정부의 2027회계연도 국방 예산을 50%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이경민 대신증권 FICC 리서치 부장은 “국방예산 증액 발언 이후 방산기업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고, 국내 방산기업에도 수혜 기대가 반영됐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에 이어 그린란드까지 군사력 투입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세계 안보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방산주 랠리는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의 유럽 방산주 바스켓은 지난해 90% 상승한 데 이어, 올해 들어 21% 급등했다. 독일의 재무장 정책의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라인메탈은 지난해 150% 급등했고, 이달 22% 추가로 상승했다. 주가 강세는 유럽 방위산업체들의 기업공개(IPO) 추진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미국 방산주 바스켓도 지난해 30% 상승했고, 올해 13% 더 올랐다.
로이터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과 역내 다른 지역에서의 무력시위 가능성에 대한 트럼프의 경고, 워싱턴(미국)의 그린란드 확보 의지,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이 베이징(중국)과 모스크바(러시아)에서 어떻게 비칠지를 더해보면, 방산주가 급등하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방산주 랠리의 구조적 배경으로는 ‘안보의 외주화 한계’가 지목된다. 위즈덤트리의 아니카 굽타 거시경제 디렉터는 “미국이라는 핵심 동맹에 대한 신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 큰 각성 효과를 줬다”며 “재무장 수준뿐 아니라 속도 자체가 빨라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싱가포르은행의 수석 거시 전략가인 만수르 모히우딘은 “미국의 가감 없는 위력 과시가 주는 충격은 각국이 국방비 지출을 계속해서 늘리도록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하지만 방산주는 수요가 정치적 결정에 좌우돼 변동성이 크고, 실적 반영까지 시차가 크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당장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이 진전될 경우 투자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 최근 가파른 랠리로 유럽 방산주가 지역 대표지수 대비 고평가 수준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 하반기에는 “각국 정부의 발주가 언제 실적에 반영되느냐”는 회의론이 부각되며 조정이 나타나기도 했다.
강현기 DB증권 연구원은 “방위 산업은 국가 간 경쟁이 반복되는 일종의 ‘내쉬 균형’(게임이론에서 균형점)에 놓여 있다”며 “신규 투자자는 급등 이후 조정 국면을 거친 재돌파 시점을 노리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