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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하는 마음]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해야 할 일

중앙일보

2026.01.11 07:08 2026.01.1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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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지나간 한 해를 돌이켜볼 때 과학기술분야에서 가장 떠들썩했던 주제는 인공지능(AI)이었다. 미국의 타임지는 2025년 ‘올해의 인물’로 인공지능 분야에 기여한 8명의 인물들을 선정하였다. 세계 각국의 정부도 사업가도 기술자도 다들 미친 듯이 인공지능에 몰입하였고, 그 중심에 자리잡은 엔비디아라는 회사는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돌파한 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무조건 좋아할 일은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인공지능 관련 기업들의 폭발적 성장이 결국 꺼지고 말 거품이라는 경고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고, 그보다도 더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은 무서운 속도로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활동과 존재 자체에 미칠 영향이다.

인간 영역에 깊게 침투한 AI
‘사람의 쓸모’ 깊은 의문 들어
인간의 자기성찰 더욱 필요해
최종 판단과 경험은 인간 몫

지난해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서 열린 ‘자율주행 및 AI 데이’ 행사장 무대. [로이터=연합뉴스]
근래에 개발된 인공지능 에이전트들은 수준 높은 자료 수집과 분석을 엄청난 속도로 해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과학 연구에도 사용된다. 그뿐 아니라 뛰어난 언어능력을 발휘하며,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고 시를 쓰는 등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쓰는 경지에 이르렀다. 기계가 이렇게 모든 일을 한다면, 또 사람보다 훨씬 더 빠르게 효율적으로 한다면 도대체 사람은 무슨 쓸모가 있는 것인지, 사람이 직접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공지능이 특별한 이유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물론 오래전부터 있어온 일이다. 공업·농업·건설업에서 힘 세고 정밀한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많은 부분 불필요하게 했으며, 인지적인 영역에서도 계산기나 구식 컴퓨터로 인간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와 정확성을 가진 작업을 하는 것은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특별한 혼란을 가져오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을 의외로 잘 해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벌써 오래전, 알파고가 바둑의 달인 이세돌을 물리쳤을 때 그 생생한 충격을 경험했다. 최근 개발된 인공지능을 볼 때 가장 경이로운 것은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가 글을 쓴다는 것은 대개들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챗GPT 등 인공지능 에이전트들이 웬만한 사람보다 글을 더 잘 쓴다. 말끔한 문장을 지어내고 글의 구성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해낸다. 한 가지 언어로 글 쓰는 것을 넘어서, 번역과 통역도 거침없이 해낸다. 이것은 인간 중에도 다년간 훈련받고 경험을 쌓은 최고의 전문가들만이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인데, 이제는 그 전문가들이 인공지능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이제 예술도 거기에 맡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림과 시를 내가 끄적거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으며, 인공지능이 지은 노래가 인기 차트에 오르는 사건까지 이미 일어났다.

그러면 이제 인간 특유의 직관이나 창의성은 낡아빠진 개념에 불과한가? 그렇게 섣불리 생각하기는 이르다. 인공지능이 박학다식한 것은 세상에 나와 있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기 때문이며, 언어를 잘 사용하는 것은 인간들이 말해 놓은 것을 다 섭렵해 모방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데이터 속에 있는 패턴을 잘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내놓은 결과의 가치에 대한 판단력은 미미하고, 결국 그 판단은 인간의 임무이다. 인공지능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아직 경험이 부족한 조수에게 일을 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조수가 가져온 결과는 일 시킨 사람이 보고 판단해 채택하든지 폐기하든지 다시 해오라고 시키든지 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가진 가치관에 의하여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인공지능에 시킬 수 없다. 인공지능이 극단적인 정치적 발언 등을 하는 것을 자동화된 알고리즘으로 막으려는 시도는 있지만 잘 안 되고 있다. 우리가 정치인들에 대한 많은 비판을 하지만, 인공지능이 모여서 하는 국회나 내각은 생각할 수 없다.

인생의 의미는 직접 경험하는 것
그러나 어떤 것도 영원히 인간만의 영역이리라 장담할 수는 없다. 기술은 아무리 조심스레 개발한다 해도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발전될 것이고,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겼던 곳들을 계속 침범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래도 인간만이 가진 능력과 인간이 직접 해야만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따분하고 피곤한 일이지만 그런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포기한다면 인간은 그야말로 기술의 노예가 될 것이다. 또 한가지 상기할 점은, 인생의 의미는 직접 경험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계산기를 쓰더라도 어린이들에게는 산수를 가르쳐서 직접 계산하는 법을 우선 깨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숫자를 곱하고 나누고 해 본 경험 없이 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방정식을 풀어 보고 미적분을 해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그렇다. 인공지능이 번역해 주면 내가 애써 할 필요는 없지만, 외국어를 직접 힘겹게 배우면서 이국적 사고방식을 배우고, 또 그러한 다른 사고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게 되는 일은 인공지능이 해 줄 수 없다. 무슨 일이 되었건 인공지능이 더 잘한다고 거기에 모든 것을 맡긴다면 우리는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는 기회를 빼앗기므로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없다. 사람이 해주건 인공지능이 해주건 남이 다 해주는 인생은 무의미한 인생이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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