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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의 아메리카 편지] 트럼프식 먼로 독트린

중앙일보

2026.01.11 07:10 2026.01.1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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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2026년 1월 3일, 미국이 군사작전을 감행했다.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를 체포해 뉴욕으로 압송한 것이다. 12년간 베네수엘라를 통치해 온 지도자를 불과 3시간 만에, 미군 사상자 없이 사실상 ‘제거’한 셈이다. 부부는 마약 밀매는 물론 관련 테러 공모, 무기 관련 혐의 등으로 기소되어 미국 법정에 섰다. 일부 SNS에는 베네수엘라 시민들이 거리에서 환호하는 장면이 퍼졌지만, 그중 다수가 베네수엘라 현장이 아니라 해외에서 촬영됐거나 과거 시위 영상으로 확인됐다. 마두로 한 사람을 끌어내렸다고 체제가 곧장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과연 누가 미국에 그런 권한을 부여했는가? 더구나 트럼프는 이번 개입을 민주주의나 인권의 언어로 포장하지도 않았다. 그는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서반구에서의 미국 지배를 노골적으로 거론한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개입은 단발적 군사행동이 아니라 트럼프식 먼로 독트린의 재가동이다. 민주주의의 언어를 벗어던지고, 아메리카대륙을 미국의 관리 구역으로 선언한 것이다.

고대 로마 역시 처음부터 제국을 선언하지 않았다. 공화정 말기의 질서 회복과 폭군 처벌의 명분으로 개입하며, 스스로를 지배자가 아니라 ‘치안 유지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단속으로 시작된 군사 행동은 상주 주둔과 행정 관리로 굳어졌고, 불가피라는 논리는 끝없이 연장됐다. 질서를 세운다는 명분은 결국 로마인들의 삶을 타율에 종속시키는 장치가 됐다. 그 경직성은 결국 황제 체제를 탄생시켰고, 기독교를 황제교화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작전은 위험한 선례를 세웠다. 힘의 언어가 점점 노골화되는 국제정치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방중·방일 외교에 나섰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국익을 지키는 실용주의적 계산과 기술이다. 강대국이 제멋대로 움직일수록, 중견국은 더 지혜로워야 한다.

김승중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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