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손녀와 아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충무공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2025년 11월 28일~2026년 3월 3일)을 보았다. 충무공의 나라 사랑에 뭉클한 마음을 전하는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공은 1592년 4월 13일 700척의 전함을 동원한 기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에서 목숨을 바쳐 존망에 처한 나라를 구했다.
정쟁에 빠져 타협 사라진 국회
독주는 또다른 독주 부를 뿐
충무공 애국심 흉내라도 내야
충무공이 7년 임진왜란을 꼬박꼬박 기록한 『난중일기』는 증언한다. “자려 해도 잠들 수 없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1593년 7월 1일) 원균이 이끈 칠천량 전투에서 일본에 궤멸당해 이름만 남은 조선 수군을 백의종군 중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이끌 때도 결연했다. “지금 열두 척의 배가 있고, 신(이순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며 올돌목(명량)의 조수 변화를 이용해 330척의 적선을 쳐부수는 명량대첩(1597년 9월 16일)을 거두었다. 철수하는 적을 끝까지 섬멸한 마지막 전투인 노량대첩(1598년 11월 19일)에서는 총탄을 맞고 “지금 싸움이 급하구나. 부디 내가 죽었다고 말하지 말라”며 운명했다. “공의 죽음이 알려진 후 통곡이 바다를 덮었다.”(『칼의 노래』, 김훈)
장군은 감성을 겸비한 무장이었다. 바다를 정찰한 후 귀로 길을 “석양을 타고 왔다”(1592년 2월 12일)고 적고 “비가 아주 많이 쏟아졌다. 모든 일행이 다 꽃비에 젖었다”(1592년 2월 23일)고 썼다. 어느 날 일기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한 살을 더했다. 이는 전쟁 중이라도 행복한 일이구나”(1594년 1월 1일)라고 했다. 흉년과 전염병으로 고통을 겪을 때는 농사짓는 둔전을 마련하고, 물고기와 소금을 팔아 군량을 확보하고 전선을 건조했다. 공은 전투 지혜를 구하기 위해 고을의 수령, 군관, 백성의 의견을 경청하였다. 충무공은 용맹한 장수이고, 탁월한 지략가이며, 군사와 백성을 살피는 따뜻한 인품의 애국자였다.
그러한 충무공도 정쟁에 희생되어 파직되고(1597년 2월 6일) 옥고의 고초를 겪었다. 서인과 동인으로 갈라져 권력 쟁취에 혈안이 된 정치 모리배들 때문이었다. 당파적 정쟁은 대마도주가 전해온 일본 통일을 이룬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할 수 있다는 정보에 대한 통신사의 평가(1591년 3월)도 ‘곧 쳐들어올 것이니 대비가 필요하다’(서인 황윤길)와 ‘그런 위인이 못 된다’(동인 김성길)로 정반대로 갈리게 했다. 나라의 안위마저 당파성에 휘둘린 것이다. 이러니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일본군(15만8000여 명)이 닥치는 대로 조선인을 죽이고 코를 베어 승리의 표식으로 삼으며 파죽지세로 북진하여 수도 한양을 함락하는 데 고작 20일밖에 걸리지 않는 무방비의 나라가 된 것이다.
협치 대신 상대방을 헐뜯고 배제하는 당파적 정쟁이 21세기 우리 국회를 지배하는 것은 비극이다. 상대를 악마화하는 적대 의식으로 갈등과 균열은 확장일로고 이해와 통합은 종적이 묘연하다. 정당의 대표와 강성 정치인들이 앞장서고 있는 팬덤 정치는 국회의 생명인 대화·토론·타협의 실종을 낳고, 교조주의를 강요한다. “교조주의(자)는 인간의 다양한 경험을 무시한다. 교조주의자일수록 이런 경험을 극단적으로 무시한다. 이들은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하나의 렌즈로만 바라보고, 그 렌즈로 볼 수 없는 것들은 모두 무의미하다며 외면한다.”(『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버트런드 러셀). 정쟁은 우리 공동체에 전방위적으로 크나큰 병폐를 낳고 있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면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고, 연애나 결혼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노골화하고 있다.(‘2023년 사회갈등과 사회통합 실태조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합으로 기적 같은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 공동체의 와해를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국회는 여야가 협치를 통해 공유를 도출하고 입법하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대화와 타협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공동체가 처한 보편적 사실(진실)을 파악하고, 적절한 입법 공론장의 역할로 협치하는 국회가 되게 할 것이다. 강성 지지자의 요구를 대변하고, 당파 이익에 매몰되고, 삼권분립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을 제정하는 국회는 편향된 국회이다. 협치가 부재하고, 야당 의견이 소외되고, 여당이 독주하는 국회는 모든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진정한 국회와는 거리가 멀다. 상대에 대한 포용이 없는 오늘의 일방통행은 또 다른 내일의 일방통행을 잉태한다. 국회는 의원 개인이나 정당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일하는 곳이다. 충무공의 애국심을 흉내라도 내려고 애쓰는 의원과 국회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