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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된 진보, 부패로 망할 위기 [김성탁의 시선]

중앙일보

2026.01.11 07:26 2026.01.1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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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논설위원
“국민의힘에나 있을 일 아닌가 생각해왔는데 우리 당에 있다니….”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강선우 전 민주당 의원과 김병기 전 원내대표가 연루된 공천 헌금 의혹이 불거지자 했던 말이다. 그는 “너무 충격적이라 의원들 모두 거의 '멘붕' 상태”라고 했었다.

박 대변인의 반응처럼 한국 정치에선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회자하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 권위주의 세력이 장기 집권하는 동안 금권선거나 부정부패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사회적 약자 보호나 공정, 투명성을 내세웠던 진보 세력은 상대적으로 도덕적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 세력을 중심으로 풍찬노숙에 익숙하던 세력이 집권에 성공한 이후에도 권력형 비리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당시 대통령 아들 비리는 돈과 로비, 청탁과 이권 개입이 결합돼 진보의 도덕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청렴 이미지가 강했던 노무현 정부에서도 대통령 가족과 측근이 연루된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면서 탈권위 흐름에 흠집이 났다. 문재인 정부에선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일가의 입시 의혹이 검찰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지며 정권이 내세웠던 공정의 가치를 뒤흔들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왼쪽)과 강선우 의원. 중앙포토
보수·진보가 번갈아 집권하는 경향이 나타난 최근에도 정치인들의 일탈과 비리는 반복되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일이 터지면 ‘너희도 그렇지 않았냐’며 상대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셀프 면죄부’를 주고받는다. 증거 불충분 등의 사유로 경찰이 내사 종결한 황보승희 전 국민의힘 의원의 공천 대가 금품 수수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뇌물의 힘’”이라고 날을 세웠었다. 하지만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의 공천 헌금 의혹에 대해선 ‘휴먼 에러’라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가 11일 김병기 의원에게 사실상 자진 탈당을 요구하면서 “애당의 길을 고민해 달라”고 요청했다. 강선우 의원 제명에 이어 당에서만 내보내면 민주당과 관련이 없어진다고 보는 모양이다. 하지만 도덕적 우위를 상실한 진보는 진영 논리에 기대 기득권을 향유하는 정치 집단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념 성향이 대립하고 지역감정이 남아있는 한국에선 한번 국회에 진입하면 다시 당선될 가능성이 커진다. 영·호남은 강세 정당이 뚜렷해 공천이 곧 당선이고, 한번 당선되면 지역구 관리 등을 통해 생명 연장이 용이하다. 집값이 많이 오른 서울이 격전지로 꼽히지만 강남 3구는 보수 정당이, 서울 동북·서남권 등은 진보 정당이 강세다. 대전·충청이 ‘스윙 보터’로 꼽힐 뿐 경기·인천에선 진보 정당 후보가 훨씬 많이 뽑히고 있고, 강원에선 보수 정당 우세가 두드러진다.
계엄 후 집권 세력의 내로남불
먹이 사슬 익숙해진 진보 정치
민심 식는 것 청와대만 모르나
의원 배지를 단 뒤에는 대통령이나 대선후보, 당 대표 등 실세에게 충성하며 다시 공천을 받는 데 집중한다. 국내 정당에선 국회의원 공천에 국회의원이 관여한다. 의원들이 마음대로 보좌관을 뽑을 수 있다 보니 시종처럼 부리는 일이 발생한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시의원이나 구의원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돈을 갖다 바치는 출마 희망자들이 생겨난다.

이런 먹이 사슬 구조에서 진보 진영 정치인들도 예외 없이 기득권이 돼 왔다. '공천 개혁'이라 부르는 의원 물갈이는 보스에게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나 다른 계파를 쫓아내는 기제로 쓰일 뿐이다. 참신한 외부 인재 영입은 소수에 그친다. 이런 작업도 실세들끼리 밀실에서 한다. ‘비명횡사’ 공천을 주도했던 김 의원이 버티는 것이 여러 국면마다 그와 얽히고설킨 현 여권 정치인이 많기 때문이라는 자조가 나오는 까닭이다.

윤석열 정부의 무도한 계엄으로 인한 탄핵을 거쳐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여당이 된 민주당의 도덕적 일탈은 그래서 더 실망스럽다. 1억원 수수 의혹에도 해당 시의원이 공천된 것을 김 전 원내대표는 뻔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강 의원을 여성가족부 장관에 앉히려 안달하던 여권은 뭐 하는 집단인가. 김 의원 측에 금품을 줬다는 탄원서가 의혹의 당사자에게 가도록 한 이재명 당시 대표실은 알고도 덮으려 한 것 아닌가.
이혜훈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지난 9일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갑질 논란에 이어 수십억 원 '로또 아파트' 부정 청약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를 그대로 두는 청와대는 또 뭔가. 민심은 차갑게 식어가는데 청와대만 모르는 것 같다. 이러다가는 결국 진보도 자신들의 비리 의혹 덮기에 바빴던 윤석열 정부보다 나은 게 없지 않느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김성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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