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정치인의 태도로도 결정된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와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악행(惡行)은 한국 정치의 치부를 드러냈다. 배우자, 아들, 며느리, 손주까지 등장하는 갑질과 사익 추구의 막장극은 범부(凡夫)의 순진한 상상을 뛰어넘는다. 오만한 권력이 악취를 뿜고, 현기(眩氣)를 일으키고 있다.
김병기는 보좌관에게 국정원 직원인 장남의 업무를 돕고 차남의 예비군 훈련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 며느리와 손주의 공항 의전까지 챙기게 했다. 보좌관을 ‘가신(家臣)’으로 부려먹었다. 장남을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소에 입사시키려다 거절당하자 경쟁 업체에 취업시켰다. 이후 보좌진에게 “문을 닫게 해야 한다”며 1위 업체를 공격하는 질의서를 작성하게 했다. 두 업체 모두 김병기가 속한 국회 정무위원회 피감기관이었다. 헌법기관에 주어진 공적 권한을 사적 이익 추구와 보복을 위해 휘두른 명백한 직권 남용이다. 김병기는 항의하는 보좌진 6명을 단칼에 잘랐고, 이들은 폭로전으로 복수에 나섰다.
이혜훈은 자기 이름이 언급된 언론 기사를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턴 에게 “아이큐가 한 자리냐” “널 죽였으면 좋겠다”는 폭언을 했다. 심야에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똥오줌을 못 가리냐”고도 했다. 언어폭력을 넘어선 ‘인격 살인’ 수준이다.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이용한 부동산 투기로 30억원대 시세차익 의혹, 장남을 미혼으로 위장한 고가 아파트 청약 당첨 의혹도 터졌다. 사실이라면 그가 호기 있게 외쳤던 ‘경제 정의’와 정반대의 편법, 탈법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달랐다. 보좌진은 종처럼 부려먹는 ‘을(乙)’이 아니라 ‘동업자’이고 ‘동지’였다. 김영삼은 인간미가 넘쳤다. 김기수 수행비서의 실수로 혼자만 배에 붉은색 띠를 두른 연미복을 입고 청와대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상도동 자택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기수야, 니 한강에 뛰어내리레이”라고 혼을 냈지만 뒤끝은 전혀 없었다. 이렇게 너그러운 김영삼을 김기수뿐 아니라 모든 비서가 끝까지 모셨다. 김대중은 비서들을 “권(노갑) 동지” “김(옥두) 동지”로 불렀다. 대통령이 된 뒤 젊은 행정관의 보고를 받을 때도 학생처럼 노트 필기를 했다. 자신의 사형 집행을 앞두고도 고문당한 ‘동지’와 그 가족들의 생계와 안위를 걱정했다. 서거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고난의 시절을 함께 견뎌온 참모들은 지금도 매주 현충원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노무현 의원 보좌관이었던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노 의원은 활동비와 수당을 모두 보좌진에게 주었고, 지방 출장을 가면 한방에서 잤다”고 했다. 노무현은 “의정활동을 하려면 법을 알아야 한다”며 보좌진에게 법학을 가르쳤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구속되자 “나 대신 매를 맞고 있다”며 눈물 흘렸다. 황이수 전 청와대 행사기획비서관은 “의원 시절부터 열아홉 살 어린 참모에게 ‘이수씨’ ‘광재씨’ ‘희정씨’라고 존댓말을 썼다”며 “낙선하면 다른 의원실에 부탁해 어떻게든 우리를 취직시켰다”고 했다. 노무현은 약자에게 관대하고 강자에게 당당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4세기에 제자들과 함께 그리스 158개 도시국가의 통치체제를 실증적으로 연구해 『정치학』을 썼다. 1권 1장에서 “모든 공동체는 어떤 선(善)을 실현하기 위해 구성된다”고 선언했다. 통치자가 법을 무시하고 사욕(私慾)에 따라 권력을 휘두르면 최악의 정체인 ‘참주정(僭主政·tyranny)’이 된다고 했다. 참주는 신하들이 서로를 불신하고 감시하게 해서 권력을 유지한다. 바로 이혜훈이 보좌진을 관리한 방식이다. 그리스인은 휴브리스(Hubris·오만)를 가장 큰 죄악으로 생각했다. 상대방을 학대하면서 자기 만족을 추구하면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가 그를 파멸시킨다고 믿었다. 보좌진을 노예처럼 부리고 존엄성을 훼손한 김병기·이혜훈 두 사람의 악행은 현대판 휴브리스에 해당한다.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을 집필하기에 앞서 3권의 윤리학 책부터 썼다. 근대의 막스 베버가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윤리였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가 양 날개다. 그에게 윤리는 “착하게 살자”는 도덕적 훈계가 아니다. 폭력적 속성을 갖는 위험천만한 실체인 권력을 다루는 정치인이 반드시 갖춰야 할 전문적 역량이다. 정치의 출생지는 윤리인 것이다. 윤리를 파괴한 정치인인 김병기와 이혜훈이 법을 만들고 예산을 주무르게 하는 것은 굶주린 맹수에게 어린 양을 맡기는 위험한 결정이다.
눈앞에서 울고 웃고, 살아 숨 쉬는 개별적 존재를 학대하는 사람이 저 멀리 있는 추상적 집단인 국민을 사랑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양심에 따라 스스로의 거취를 결단해야 한다. ‘오만의 정치’를 ‘윤리의 정치’로 되돌리기 위한 최소한의 참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