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을 계기로 촉발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 내 180여 개 도시에서 시위가 계속되며 사망자가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이란 정부는 경찰·이슬람혁명수비대뿐 아니라 정규군까지 시위 진압에 동원할 방침을 밝혔다. 이에 미국 정부가 대규모 공습을 포함한 군사 개입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노르웨이에 기반한 단체 이란인권(IHR)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이어진 이란 반정부 시위에서 현재까지 최소 19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9일 해당 단체가 집계한 51명에서 약 4배 뛴 수치다. IHR은 9~10일 이틀간 사망자 발생이 집중됐으며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영안실에서는 시위에 참여한 희생자 시신 수백 구가 발견됐다는 전언도 있다고 언급했다.
익명을 요구한 시위 참여자는 CNN에 “군용 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며 “병원 내 시신들이 서로 겹쳐 쌓여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또한 CNN은 의료진을 인용해 “테헤란 내 한 병원에서만 눈에 파편이 박힌 환자가 200~300명에 이른다”고도 전했다. 영국 BBC방송은 이란 내 병원마다 부상자와 사망자가 넘쳐나 심폐소생술을 할 시간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많은 젊은이가 머리와 심장에 총탄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외신은 집계된 사망자 수보다 실제 인명피해는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란 정부가 지난 8일부터 국내·국제전화와 인터넷을 전면 차단하며 외부와의 소통을 막고 있어서다. IHR은 “확인되지 않은 보고에 따르면 일부 소식통은 2000명 이상이 사망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고 했다.
통화 가치 하락과 연간 40%에 육박하는 물가 상승률 등 경제난에 대한 불만에서 촉발된 시위는 신정 체제 종식 요구로까지 확산됐다. 시위대는 그동안 금기시됐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겨냥한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한편,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왕세자 리자 팔레비(65)를 호출하고 나섰다. 이란 이민자가 많은 영국·독일·프랑스 등 서유럽 각지에서 열린 연대 시위에서도 “샤(국왕) 만세” “팔레비와 함께 자유를”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등장했다.
이러한 흐름에 호응하듯 팔레비는 이날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올린 영상 메시지를 통해 “승리는 당신들의 것”이라며 “거리에서의 집단행동을 멈추지 말라”고 시민들에게 촉구했다.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 전 국왕의 장남인 그는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망명 생활을 이어왔다. 그는 현재도 왕정 복귀 의사는 없다고 선을 그으며, 이란이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상징적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시위대가 체제 종식까지 거론하자 이란 정부는 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이란 정규군인 공화국군은 지난 10일 성명을 통해 “국가의 이익과 전략적 기반시설, 공공 재산을 수호하겠다”며 반정부 시위 진압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시위 사태의 배후로 적국인 이스라엘과 테러 단체 등을 지목하고 “적의 음모를 저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하마드 모바헤디아자드 이란 검찰총장도 성명을 통해 “시위에 참여하면 누구든 신의 적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혐의”라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군사 개입 가능성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열어두고 이란 반정부 시위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이 테헤란에 있는 비군사시설을 포함한 광범위한 군사 타격 선택지를 보고받았으며, 타격을 승인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라고 전했다. WSJ에 따르면 이란 내 군사 표적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공습도 논의 과정에서 거론됐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같은 날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대이란 군사작전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트루스소셜에 “이란은 어쩌면 과거 어느 때보다 자유를 바라보고 있다”며 “미국은 도울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전날 백악관 행사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부가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살해할 시 미국이 개입해 “이란이 아픈 곳을 매우 세게 때리겠다”며 군사력 동원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이란에 대한 공격이 있을 경우 모든 미군기지는 우리의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며 “오판을 경계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