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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아프고 지친 몸…'만병의 불씨' 만성 염증 때문 [Health&]

중앙일보

2026.01.1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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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지 않는 염증 다스리기

혈관 따라 이동해 서서히 온몸에 번져
지속 땐 고혈압·당뇨·심혈관질환 유발
스트레스·잘못된 식습관이 악화시켜

작은 불씨가 큰불을 만든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도, 뜨겁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불씨를 그대로 두면 결국 불길은 번진다. 만성 염증이 그렇다. 몸속 어딘가에서 아주 약하게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혈관과 장기를 타고 번지며 각종 질환의 출발점이 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만성 염증을 ‘만병의 불씨’라고 부른다.

이유 없이 몸이 아프고 쉽게 피로하다는 사람이 있다. 초음파나 MRI, CT로 몸을 구석구석 스캔해도 특별한 병명은 나오지 않는다.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다. 이런 경우 서서히 쌓이고 있는 만성 염증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MRI·CT로 스캔해도 병명 안 나와

염증은 본래 해로운 존재가 아니다. 외부 자극이나 손상에 맞서 몸을 지키고, 회복을 위해 작동하는 정상적인 면역 반응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통증과 부기, 열감은 몸이 위험을 감지해 대응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런 급성 염증은 문제를 해결한 뒤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염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감염이나 외상이 없는데도 염증 반응이 낮은 수준으로 계속 이어지는 상태가 만성 염증이다. 불은 꺼졌는데 경보만 계속 울리는 셈이다. 이때 몸은 끊임없이 긴장 상태에 놓인다. 가천대 길병원 가정의학과 서희선 교수는 “만성 염증일 경우 면역 세포가 과도하게 긴장하면서 오히려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산화 스트레스가 쌓여 몸에 부담을 준다”고 말했다.

이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몸은 만병의 토양으로 변한다. 염증 물질은 혈관을 타고 전신을 돌며 장기와 조직의 기능을 서서히 떨어뜨린다.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는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건 동맥경화성 질환”이라며 “심근경색·협심증 같은 심혈관 질환은 물론 뇌경색·뇌출혈 위험도 함께 높아지고, 일부 암과 만성 염증의 연관성도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뇨병과 고혈압 같은 대사 질환도 마찬가지다. 염증은 인슐린 분비를 줄이고, 혈압을 조절하는 호르몬의 민감도를 낮춘다. 작은 불씨가 여러 병으로 번지는 구조다. 서 교수는 “만성 염증은 고혈압·당뇨·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의 뿌리로 봐야 한다”며 “염증이 많아지면 만성질환이 악화하고, 만성질환이 있으면 염증이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사 질환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

만성 염증의 원인은 대부분 일상과 맞닿아 있다. 스트레스가 대표적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땐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이 과정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 호르몬이 염증 반응을 촉진한다. 잘못된 식생활도 염증 수치를 끌어올린다. 과자·튀김류에 많은 트랜스지방, 오메가6 지방산 위주의 식단은 세포의 염증 반응을 키운다. 흡연과 음주는 물론 비만도 만성 염증을 키우는 대표 요인이다. 비만인 사람은 지방이 원래 자리인 피하 조직을 벗어나 다른 부위에 과도하게 쌓이는데, 이런 지방이 염증 물질을 분비한다.

만성 염증은 하나의 병으로 진단되는 개념은 아니다. 대신 혈액검사로 측정하는 CRP(C-reactive protein)가 체내 염증 상태를 가늠하는 참고 지표로 쓰인다. 수치가 1㎎/L 미만이면 정상 범위로 본다. 강 교수는 “급성 감염이 없는데도 CRP나 고감도 CRP 수치가 높다면 만성 염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며 “특히 비만, 지방간, 고혈압, 당뇨병이 있는 경우 증상이 없어도 한 번쯤 염증 수치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만성 염증은 크게 아프다고 외치지 않는다. 피로감, 무력감, 수면장애, 소화불량처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증상으로 나타난다. 눈에 띄지 않아 더 위험하지만, 동시에 관리할 여지도 있다. 관리법은 거창하지 않다. 서 교수는 “만성 염증은 생활습관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며 “잘 자고, 과식하지 않고,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기본적인 습관이 만성 염증이라는 불씨를 키우지 않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신영경([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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