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는 청소년 언론매체 ‘토끼풀신문’(이하 토끼풀)이 있습니다. 2024년 4월 30일 창간한 토끼풀은 청소년들이 직접 기사를 쓰고 편집하며 발행하는 신문으로, 은평구에 소재한 중학교 재학생 30명가량이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죠. 학교 주변부터 사회 문제까지 폭넓은 이슈를 다루는 토끼풀의 문성호(서울 연신중 3) 편집장과 서부건(서울 서일중 3) 사회부장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토끼풀을 “청소년들이 주도해서 학교 밖에서 독립적으로 만드는 신문”이라고 정의했죠.
“2024년 봄 교내 자율동아리로 시작했는데, 학교 공사의 학습권 침해라든지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 보도하다 보니 학교 입장에서 보기 불편하셨나 봐요. 간섭이 심해지며 2025년 초에 독립했죠. 발행 비용이 문제였는데, 학교 동아리는 교내 인쇄실을 사용할 수 있지만 독립하면서 못 쓰게 됐거든요. 광고 제안서를 수십 장 써서 돌렸는데 호응이 적어 후원을 받게 됐죠. 돈이 모자라 종이 신문 발행 못 한 달도 있습니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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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들이 만든 언론이 종이 신문을 택한 이유
중학생 또래 청소년에게는 종이 신문보다 유튜브 같은 영상매체가 더 익숙할 텐데, 신문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죠. 문 편집장은 “초1~2부터 가리지 않고 여러 신문을 봤다”며 “그때 소년중앙을 알고 보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갑자기 소년중앙 배달이 끊겨 아쉬웠다”고 했죠. “유튜브도 고려하긴 했는데, 이미 재밌는 영상이 엄청 많잖아요. 우리가 만든 걸 과연 사람들이 볼까 싶었죠. 학교에서는 휴대전화를 못 쓰니 못 보고, 집에서는 다른 할 것도 많고요. 또 영상은 촬영도 하고 재밌게 편집도 해야 하고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신문은 일단 글만 쓸 줄 알면 되고, 지면 편집은 지금 제가 다 하고 있는데 인디자인 프로그램에 익숙해져서 할 만해요.”(문)
토끼풀 유튜브 채널도 있긴 하지만 유명무실하며, 기사는 홈페이지에 먼저 싣고 모아서 한 달에 한 번 종이 신문으로 발행한다는데요.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못 쓰다 보니 종이 신문을 배포하면 제법 많이 읽히는 모양입니다. 서 사회부장은 “여러 학교 다니는 기자단 친구들을 직접 만나기는 어려우니까 보통 카톡이나 슬랙 등 온라인으로 자기가 쓰고 싶은 아이템을 발제하고 얘기를 나눈다”고 했죠.
“일반 언론에서 다루는 스트레이트성 기사는 안 써요. 그런 데서 아이디어를 얻긴 하지만요. 좀 더 깊고 넓게 자료를 찾아보고, 인터뷰 요청도 하고요. 저는 원래 영락중에 다니다가 전학을 갔는데요. 영락중은 종교단체가 선교를 목적으로 세운 미션스쿨이라 종교 수업도 있고, 아침 예배도 필수로 참여해야 하죠.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자퇴도 안 되고 학생은 학교를 선택할 수가 없는데 말이에요. 여기에 착안해서 알아보다가 미션스쿨이 정부의 예산 지원을 많이 받으면서도 종교재단의 의무인 법정부담금조차 제대로 납부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기사화했죠. 다른 미션스쿨 학생들의 제보도 받고요. 이어서 재단 교회 설립자에게 서북청년단 관련 이력이 있는 걸 알았는데, 학교에선 공만 미화해서 얘기하고 과는 다루지 않더라고요. 관련 후속 기사도 냈습니다.”(서)
문 편집장은 “종교재단별 법정부담금 납부 현황 자료는 서울시교육청에서 찾아 그래프로 만들고, 학교 교목실 사진은 직접 찍었다”며 “만약 촬영이 불가능하면 저작권 프리 이미지를 사용한다”고 덧붙였죠. “인터뷰 섭외도 직접 하는데, 청소년의 이점이랄까 조금 쉽게 요청에 응해주시는 편이에요. 분야별로는 국회의원이 조금 어려운 편인데, e메일 확인을 잘 안 하셔서 의원실에 전화도 여러 번 했죠. 황당한 거절 핑계를 대는 경우도 있었고요. 근데 또 기후동행카드 롤모델 ‘독일 티켓’ 관련 인터뷰 요청에 독일 국회의원은 바로바로 답장해주셔서 수월했죠. 인터뷰이를 찾으며 기성 언론에 약간 실망하기도 했어요. 네팔 Z세대 반정부시위를 다루면서 현지 활동가 인터뷰는 토끼풀이 국내 언론 중 처음으로 했거든요. 대부분 외신 인용이거나 국내 유학 온 네팔 청년을 인터뷰했더라고요. 저희는 인스타그램 DM으로 연락하고 구글미트로 인터뷰했죠.”
후원 등 신문 발행비용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하니 문 편집장은 “토끼풀에는 청소년만 있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다”고 했죠. “신문 발행인은 법적으로 청소년이 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겉보기용으로 어른 사장이나 발행인을 내세우기는 싫었죠. 부모님도 지원해 주시지 않고요. 그래서 토끼풀은 사실 인가를 받은 신문은 아니에요. 일종의 비영리단체죠. 광고 유치를 위해 광고대행업 법인을 세우고, 후원을 받기 위해 토끼풀 계좌를 만들기도 쉽지 않았어요. 열몇 군데 은행을 찾아다니고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으며 겨우 계좌를 만들었죠. 신문 배포 금지 사건으로 토끼풀이 좀 알려지면서 후원도 늘어서 더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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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풀신문 압수·폐기 사건과 언론·출판의 자유
토끼풀은 2025년 10월 발행한 제17호 신문의 1면을 백지로 낸 것이 온라인에서 이슈가 되며 이름을 널리 알렸어요. “은평구 학생 언론 〈토끼풀〉은 최근 일부 학교의 언론 탄압에 항의해 1면을 백지로 발행합니다.”라고 크게 적힌 아래에는 “정상적으로 신문을 내지 못한 것에 대해 청소년과 선생님을 비롯한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토끼풀〉 기자단 32인 일동-”이라고 쓰였죠. 이에 대해 문 편집장은 “문제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서로 타협하고 합의하고 그러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잖아요. 저희가 계속 찾아갔는데 학교 측에서는 민주적인 대화 시도에 응하지 않고 무시했어요”라고 지적했죠.
“그 전에도 기사 검열과 편집, 배포 금지 다 당한 적 있어요. 몇몇 학교는 지금도 몰래 신문을 뿌리죠. 신도중의 경우 배포 금지에 신문 전량 압수·폐기하고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려고 하질 않았어요. 압수 근거를 알기 위해 석 달 동안 정보공개를 두 차례 청구했는데, 학부모 민원 발생 소지, 교육 중립성 등을 이유로 규칙 위반이다, 외부 게시물 배포에 예외를 둘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됐죠. 그래서 관련 서명도 받고 기자회견도 열며 사회적으로 공론화됐고,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센터가 직권조사에 나섰으며, 학생 언론 자유 보장을 위한 규정 마련이 약속됐죠.”(문)
이어 “대한민국 헌법 제21조에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나오잖아요. 저희의 권리를 어느 정도 보장받아야죠. 교장선생님께 선물로 헌법과 언론의 자유를 다룬 책을 보내드리기도 했어요”라고 덧붙인 문 편집장은 “사실 신도중 사건으로 주목받으며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의 “민주적 학교공동체 위해선 정당한 표현의 자유 강화돼야” 기고도 싣고, 교육청에서 주시하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완화된 편”이라고 했죠. “시민들의 후원이 크게 늘며 재정적인 걱정이 사라지기도 했어요. 덕분에 기사 원고료 제도도 도입하고, 기자들이 필요한 무선 키보드도 사줄 수 있게 됐죠. 11월에 발행한 18호는 올컬러로 만들고 1000부에서 2000부로 부수도 늘렸어요.”(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셈인데요. 청소년이지만 언론으로서 악성댓글이나 보통은 듣지 않을 험한 말도 들을 텐데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했죠. “온라인 악성댓글은 무시하고요. 사실 저희 앞에서 좌파 언론 운운하며 매도하고 신문을 찢기도 하고, SNS로 시비 거는 일도 꽤 있어요. 토끼풀신문을 제대로 봤으면 그 친구들한테도 도움 되는 내용이 많고 중도적이란 걸 알 텐데도요. 그래서 이번에 ‘윤어게인’을 자칭하는 중학교 1학년생을 SNS 대화를 넘어 직접 만나 밥 사주면서 이야기하고 청소년 극우화 논평으로 풀기도 했죠. 이른바 ‘애국보수’들이랑 DM으로 대화하다 본인이 밀리는 것 같으면 잠수를 타는 경우가 꽤 자주 있었거든요. 심지어 원고료 준다고 해도 글 써준 사람도 없어요. 직접 만나 보니 뉴스 소비에 대한 문제점이 보였죠. 부모님이 포털을 막아 네이버 검색을 못 하는 가운데 인스타그램에서 공유하는 가짜뉴스를 믿을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게 충격적이었어요. 기초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실감했죠. 그래도 중1 ‘윤어게인’ 친구랑 3시간가량 얘기하며 대화로 풀 수 있겠다는 희망도 보고, 해당 기사를 수만 명이 보면서 응원도 많이 받았습니다.”(문)
토끼풀은 그동안 교내 급식 노동자 고충을 다룬 인터뷰 기사, 청소년 2655명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한 ‘학원 12시 조례에 청소년 95%가 반대한다’는 기사 등 청소년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보도했습니다. 서울시와 국토교통부의 기후동행카드·K패스 정책에 청소년 혜택이 빠진 부분을 지적한 기사를 낸 뒤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에 청소년 혜택을 포함시키기도 했죠. 2024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12·3 비상계엄 사태’ 호외판을 내는 등 사회·정치적 문제뿐 아니라 서울에 3개 있는 연신중 씨름부 인터뷰, 신문지 활용법, 진관중 학교생활 가이드 같은 문화·스포츠·일상생활 등 청소년 관심 분야를 다양하게 다뤘어요. 이 같은 활동과 학업의 병행은 어떻게 이뤄질까요.
“처음엔 기사를 어떻게 쓰는지도 잘 몰랐지만, 계속 쓰다 보니 국어 실력이 확실히 좋아졌다”는 서 사회부장은 “3학년을 강남 8학군에서 보냈는데 국어시험은 5분만 봐도 100점 받을 정도가 됐고, 수학 등 다른 과목도 꼬아놓은 시험 문제 해석에 문제가 없다”고 했죠. “기자 활동으로 사회 이슈 잘 알고 문해력이 뒷받침되니까 고입 면접 인터뷰에도 도움이 됐다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16기 학생기자단을 모집하는 소년중앙과 마찬가지로, 토끼풀도 신입 기자 모집 중입니다. 현재 토끼풀을 이끄는 편집부가 중학교 졸업을 앞둔 가운데, 앞으로의 방향이 궁금했죠. 문 편집장은 “적자도 계속되고, 12월쯤 방학하면서 끝낼 생각이 있었는데 전국적으로 토끼풀이 알려지며 후원도 늘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시는 뉴스레터 구독자도 늘어 이젠 함부로 끝낼 수 없게 됐다”고 했어요. 토끼풀은 지난 12월 제27회 민주시민언론상 성유보특별상도 받고 책 출간도 준비 중이죠. “고교생이 되는 만큼 편집장 등 물려줄 만한 친구를 찾고 업무를 좀 내려놓지 않을까 한데,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계속해야죠. 토끼풀 발행 외에도 다른 청소년 언론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관련 연락도 꽤 받는데 겁나서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토끼풀도 일단 하다 보니까 된 케이스니 다들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 사회부장 역시 또 다른 토끼풀의 탄생을 기대했어요. “또래 청소년 언론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지금은 토끼풀만 있으니 외롭긴 하거든요. 교류도 하고, 우리끼리 청소년 언론협회 같은 걸 만들 수도 있을 거고요. 토끼풀이 먼저 주목받고 치고 나갔으니 지금이 딱 만들기 좋은 시기 같아요. 여러분,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말고 일단 한번 해보세요!”
소중 보이스 소년중앙은 10대 어린이·청소년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토끼풀 같은 청소년 언론은 물론, 각종 청소년 활동을 제보해주세요. 소중 e메일([email protected])로 보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