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그리스에서는 아침마다 4마리의 말(馬)이 이끄는 마차가 하늘을 질주하며, 세상을 비추었습니다. 따뜻한 기운과 함께 빛을 내려주는 마차, 바로 태양신 헬리오스의 마차죠.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끝없이 달리는 건 절대로 쉽지 않지만, 헬리오스는 세상의 질서를 지키는 이 일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들 파에톤이 찾아왔습니다. 반갑게 맞이하며 무엇이든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헬리오스에게 파에톤은 말합니다. “아버지의 마차를 끌어보고 싶어요.” 한번 내뱉은 ‘말(言)’은 돌이킬 수 없었기에 헬리오스는 걱정 끝에 결국 파에톤에게 고삐를 맡기고 말죠. 자신만만하게 하늘로 날아오른 파에톤, 하지만 자신감만으로 마차를 조종할 수는 없었어요. 이내 마차는 그의 지시를 벗어나 멋대로 달려갔고, 태양의 기운이 오락가락하며 바다는 끓고 대지는 얼어붙습니다. 아프리카는 사막이 되고, 에티오피아인의 피부는 까맣게 타버렸죠. 폭주하는 태양신의 마차, 과연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태양신의 마차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게르만 신화에서도 태양의 여신 솔이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몰고 하늘을 질주하며, 인도에서도 태양신 수리야가 마차를 타고 하늘을 달려요. 일곱 마리의 말이 끄는 수리야의 마차는 단순한 태양만이 아니라 시간의 순환, 우주 원리를 구현한 상징이기도 하죠. 메소포타미아의 우투 신은 말을 타지는 않지만 말채찍을 들고 태양의 이동과 법, 정의를 지킵니다. 켈트 신화에서 말을 수호하는 여신 에포나는 여행자와 농경, 풍요를 수호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가 타는 말은 서로 떨어진 이들을 이어주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존재로 여겨졌기에 켈트를 포용한 로마 제국에서도 널리 숭배됐죠. 인도에는 의학을 맡은 쌍둥이 신 아슈빈이 있는데, ‘새벽을 끌고 오는 말의 신’으로 묘사되며 병을 고치고 늙음을 되돌리며, 회복을 이끄는 존재로 활약합니다. 신화에서 말이나 말 관련한 신이 매우 중요한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모두 말이 단순한 탈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소중하며 인간 세상의 질서에 연결된 중요한 존재임을 잘 보여줘요.
오래전 인간이 말과 동행하면서부터 인류 문명은 급격하게 변화했습니다. 말을 통해 사람들은 자기보다 훨씬 빠른 사냥감을 손쉽게 쫓아가고, 더 멀리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죠. 말에 오른 사람은 더 멀리 내다보고 앞으로 나아가 더 많은 장소를 다니며 지식과 지혜를 쌓을 수 있었어요.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가 곧 세계의 크기’. 말이 있었기에 유라시아의 수많은 문명을 하나로 연결한 몽골과 같은 제국도 탄생합니다. 켈트 여신 에포나처럼 말이 사람들을 연결한 거죠. 하지만 말은 우리에게 빛만을 주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인류의 종말을 예언한 『요한계시록』에는 세상을 파괴하는 4명의 기사가 등장해요. 종말의 네 기사는 각각 다른 상징의 말을 탔는데, 그중 전쟁을 상징하는 기사가 탄 말은 선혈처럼 붉다고 하죠.
그리스 신화에는 말과 인간이 하나가 된 종족, 켄타우루스가 등장하는데요. 야만적이고 난폭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들이 사실 스키타이 같은 유목민족을 상징화한 존재라는 설이 있습니다. 말과 일체가 되어 화살을 날리며 습격하는 유목민이 인간과 말이 합쳐진 괴물처럼 보였던 것이죠. 흉노와 몽골도 ‘악마의 군대’처럼 보였고, 가을을 뜻하는 ‘천고마비(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92회 참고)’란 말도 유목민족의 습격을 경계했기 때문이에요. 모두 끔찍한 재앙과 파괴의 상징이기도 했던 말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이야기죠.
하지만 그것은 말의 잘못이 아닙니다. 세상을 파괴할 뻔한 것이 태양 마차가 아닌, 마차를 잘못 몬 파에톤 때문이듯, 말이 파괴와 재앙을 가져온 것이 아니죠. 말은 본래 겁이 많고 순한 동물입니다. 항상 주변을 경계하며, 조금만 큰 소리에도 벌벌 떨고 도망치곤 하죠. 이를 잘 알던 간디는 일찍이 말을 탄 영국군이 몰려왔을 때, 그 앞에 당당히 나섬으로써 물러나게 했습니다. 말이 스스로 전쟁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말에게 전쟁을 강요한다는 것을 알고 말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는 승리한 거예요.
2026년 새해는 붉은 말의 해입니다. 붉은 말이라 하면 먼저 적토마가 떠오르죠. 『삼국지』에서 가장 유명한 장수, 관우가 탔던 말입니다. 하지만 적토마의 시작은 절대로 영광스럽지 않았어요. 본래 폭군으로 알려진 동탁이, 배신의 대명사로 기억되는 여포에게 내린 선물이었기 때문이죠. 그들의 곁에서 적토마는 결코 좋은 상징이 아니었어요. 적토마가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이유는 자신이 내뱉은 말(言)을 반드시 지키고 따랐던 영웅, 관우와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병을 물리치고 재난을 막는 군신이자, 재물과 장사의 신으로까지 숭배되는 관우와 함께하면서 적토마는 폭군이나 배신이 아닌, 군신의 벗인 명마로 기억되죠. 2026년, 우리는 ‘붉은 말의 기운’과 함께 달려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해로 기억될지는 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말과 함께 달리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달렸죠. 붉은 말의 해를 건강하고 힘차게 시작해 무엇보다도 보람 있는 시간으로 기억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