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핵전쟁 대비 공중지휘통제기 ‘E-4B나이트워치’가 51년 만에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LAX)에 착륙했다. 핵전쟁 시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탑승해 전쟁을 지휘하는 전략 자산이 민간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 배경을 둘러싼 해석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LA타임스와 항공 전문매체 등에 따르면 E-4B는 지난 9일(현지시간) LAX에 착륙했다가 하루가량 머문 뒤 이륙했다. 1974년 운용을 시작한 이후 LAX 착륙은 처음이다. E-4B는 통상 캘리포니아에서 2100㎞ 이상 떨어진 네브래스카주 오펏 공군기지를 거점으로 운용된다.
E-4B의 공식 명칭은 ‘국가공중작전센터(NAOC)’다. 보잉 747-200을 개조한 기체로, 핵 공격이나 대규모 재난으로 지상 지휘 체계가 붕괴될 경우 대통령·국방장관·합참의장이 공중에서 작전을 지휘하도록 설계됐다. 핵폭발과 전자기펄스(EMP)를 견딜 수 있도록 내부는 아날로그 장비 위주로 구성됐으며, 위성·잠수함을 포함해 전 세계 미군과 교신할 수 있는 통신 체계를 갖췄다. 공중 급유 시 최대 72시간 이상 체공할 수 있다. 미군이 보유한 E-4B는 4대뿐이다.
태평양 연안 최대 민간 허브 공항에 전략 자산이 공개적으로 착륙한 점을 두고 온라인에서는 ‘전쟁 임박 신호’라는 추측도 확산됐다. 특히 최근 미국의 베네수엘라 정세 개입, 그린란드를 둘러싼 강경 발언, 인도·태평양 지역 긴장 국면과 맞물리며 관심이 커졌다.
다만 미 국방부는 이번 착륙이 전쟁 대비 차원의 긴급 조치가 아니라 피트 헤그세스국방장관의 남부 캘리포니아 방문 일정과 관련된 사전 계획된 이동이라고 밝혔다. 헤그세스 장관은 미 방위산업 생산 능력 홍보와 군 모집 확대를 위한 ‘아스널 오브 프리덤(Arsenal of Freedom)’ 순회 일정의 일환으로 이 지역을 찾았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를 즉각적인 군사 행동 신호로 해석하는 데는 선을 긋고 있다. 대신 미국이 핵 지휘 체계를 어떻게 분산·생존시키는지를 공개적으로 보여준 ‘전략적 시연’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평시에도 E-4B는 훈련과 대비 태세 점검 차원에서 이동하지만, 다수 기체의 동시 기동이나 장시간 체공, 특정 위협권을 벗어난 항로 대기 등이 나타날 경우 위기 수위가 높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항공 전문매체 에비에이션 A2Z는 “E-4B의 이동은 항상 전쟁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미국이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며 “그 자체로 강력한 억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