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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의 영화몽상] 새로운 물결의 한가운데

중앙일보

2026.01.12 07:10 2026.01.1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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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 문화선임기자
아는 것도, 보고 들은 것도 많은 영화광 청년이 드디어 첫 장편 연출 기회를 얻는다. 그의 영화광 동료들은 이미 첫 장편을, 누군가는 두 번째 장편까지 만든 터. 청년은 새로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와 패기가 뚜렷하고, 촬영 현장에서부터 기존의 관습을 답습하는 대신 그만의 새로운 방법론을 거침없이 펼친다. 그렇다고 다들 쉽게 고개를 끄덕일 리 없다. 할리우드 출신의 주연 여배우는 내심 출연 결정을 후회하고, 제작자는 촬영 일정을 성실히 지키는 대신 내키는 대로 촬영을 접곤 하는 이 신인 감독 때문에 화병 나기 직전이다.

새로 개봉한 극영화 ‘누벨바그’(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이 흥미로운 현장의 한가운데로 관객을 데려간다. 영화 속 청년은 장 뤽 고다르. 그가 찍고 있는 데뷔작은 영화사의 걸작으로 불리게 되는 ‘네 멋대로 해라’(1959). 이 작품처럼 흑백 화면으로 전개되는 ‘누벨바그’는 이 걸작의 탄생 과정을, 말로만 들어본 고다르의 연출 방식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누벨 바그는 ‘새로운 물결’을 뜻하는 불어인데, 영화사에서는 1950~60년대 프랑스 젊은 감독들이 주도한 새로운 흐름을 가리킨다.

영화 ‘누벨바그’. [사진 메가박스중앙]
신작 ‘누벨바그’는 그 주역들을 비롯해 영화광들의 기억을 자극하는 인물과 순간을 다채롭게 선보인다. 고다르 일행이 선배 감독 로베르 브레송의 신작(아마도 1959년작 ‘소매치기’) 촬영 현장을 찾았다가 삽시간에 소지품을 털리는 장면도 재미있다. 브레송은 실제 이 방면의 전문가인 앙리 카사기를 자문 겸 배우로 기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다르의 조감독, 피에르 리시앙에게도 자꾸 눈길이 갔다. 훗날 평론가이자 칸영화제 자문으로 활동하며 칸에 여러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네 멋대로 해라’ 조감독이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비로소 실감이 난다.

한국영화사에도 1990년대의 이른바 코리안 뉴 웨이브를 비롯해 새 물결이 여러 차례 일렁였다. 그중 딱히 영화사에서 손꼽는 순간은 아니지만 ‘라디오 스타’ 개봉 무렵이 떠오른다. 극장가 대목인 추석 즈음이었는데 ‘타짜’가 같은 날 개봉한 것을 비롯해 기사로 소개할 한국영화가 원체 여럿이라 고심한 기억이 난다. 돌아보니 그해 내내 그랬다.

전년도 연말 개봉한 ‘왕의 남자’, 그해 여름 ‘괴물’ 등 천만영화는 물론 각양각색, 다종다양한 새로운 시도의 한국영화가 열거하기 힘들 만큼 쏟아졌고 관객 호응을 얻었다. 그해, 2006년 한국영화 점유율은 63.6%까지 치솟았다. 문득, 퇴물 취급받는 왕년의 스타 최곤(박중훈) 곁을 변함없이 지켜준 ‘라디오 스타’의 매니저, 박민수(안성기) 같은 존재가 그리워진다.





이후남([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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