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삶의 향기] 설레는 마음으로 두려움의 강을 건너다

중앙일보

2026.01.12 07:12 2026.01.12 12:29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황주리 화가
텔레비전에서 젊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두려움이 아닌 설레는 마음으로”라는 신년 인사말을 들었다. 문득 내가 잃어버린 게 바로 그거구나, 싶었다. 분명 내게도 넘쳐났던 설렘은 사라지고 점점 두려움은 깊어져 간다. 거꾸로 가는 기차를 탄 기분이다. 초등학교 시절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던 친구가 생각난다. 내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풍경은 빙판 위에서 춤추는 모습이다. 요즘도 나는 가끔 빙판 위에서 멋지게 날아오르는 터무니없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는 두려움은 없고 설렘만 있다. 추앙하지만 자신은 절대 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을 마음속에 하나쯤 간직하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새해가 온다는 건 아직 살아있다는 거, 있을 때 잘하자는 거다. 고마운 사람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자신이 만든 감옥 속에 갇힌 삶
휘발됐던 내 안의 설렘 되살려
있을 때 잘하자, 고마운 이에게

[그림=황주리]
새해 들어 어머니에겐 늘 갖고 싶어 하시던 최신의 성능 좋은 세탁기를, 내겐 그 비싼 물감들을 잔뜩 사줬다. 물감과 캔버스가 얼마나 비싼지, 옳은 정신으로 화가가 될 꿈을 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제정신이 뭔지도 모르겠다. 작품이 많이 팔릴 때조차 화가는 마음이 편치 않은 법이다. 그림이 좋아서가 아니라 투자로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니까. 하긴 그냥 좋아서 사기엔 그림은 비싸다. 나는 그림 파는 일에 내 영혼을 몽땅 적시기 싫어졌다. 다섯 살 어린 딸이 너무 말이 없어 어머니가 미술학원에 데려간 이후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그림을 그렸다. 어린 시절의 그림 중 단 한 점이 남아있는 건 아쉬운 일이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것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일까? 삶의 흔적으로서의 그림이 짐스럽다고 느낄 때마다 그림이 내게 준 기쁨들을 생각한다. 그 흔한 ‘무제’라는 제목이 내게는 한 점도 없다. 그런데 세월이 이렇게 흐른 지금 나는 ‘무제’라는 제목이 붙이고 싶어진다. ‘무제’는 제목일까? ‘제목 없음’과 ‘무제’는 어떻게 다를까? 그냥 나 자신의 이름이 ‘제목 없음’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

남이 한 말들이 내 정신을 퍼뜩 깨울 때가 있다. 얼마 전엔 방송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내가 느끼는 분노와 슬픔은 정당하다.” 지인 중 누군가 아침에 눈뜰 때마다 화가 치민다던 말도 생각난다. 어느 영화에서 나온 “슬픔에 산채로 잡아먹히는 느낌”, 이렇게 강렬한 표현도 떠오른다. 그 모든 분노와 슬픔을 넘어 오늘도 나는 평화로운 마음을 주문한다. 복수는 나의 힘이거나 용서는 나의 힘일지라도. 나는 또 주문한다, 고로 존재한다.

햇빛 좋은 날 오후의 커피 한잔, 황혼이 찾아오는 시간에 와인 한 잔, 서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봐 준 오랜 친구를 만나 “너 참 잘 살았어” 하며 서로 토닥여주는 소중한 시간도 주문한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자신이 만든 감옥 속에서 살아간다. 인생은 기차 속에서 꾸는 쪽잠 같다. 그런 공감 가는 남이 쓴 멋진 구절들도 주문한다. 무엇보다도 내 안에서 휘발한 설렘을 주문한다.

안성기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며 아득한 어린 날을 추억한다. 그 시절 청소년 잡지 ‘새소년’ ‘어깨동무’ 등에 천재 과학 소년 김웅용과 천재 아역배우 안성기, 그리고 세계 어린이 미술대회에서 굴비를 그려 대상을 탄 나. 이렇게 셋이 나란히 잡지에 실린 적 있다.

1966년 경이었을 것이다. 한 25년 전쯤 백화점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는 특유의 따듯한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맞췄다.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는 듯 눈길을 피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그는 늘 따듯한 눈길을 주는 사람이었을 거고, 나는 지금도 그때도 날 때부터 수줍은, 그래서 도리어 차갑게 보이는 부류의 영혼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데 저렇게 말하고 마는 수줍은 영혼을 졸업하고 싶었다. 아마 지금쯤은 조금은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모든 사람의 생애는 실패로 끝이 난다. 성공한다 해도 그건 사람이 주인이 아닌 자본이 주인인 브랜드, 명품이 된다. 뜨개질이 새삼 유행이라는 말을 들은 지도 한참 되었다. 가끔 카페에서 뜨개질하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로봇 애완견, 도우미, 어쩌면 연인까지 대체될지 모르는 황홀하고도 두려운 미래. 늘 그렇듯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두려움의 강을 건너려 한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그 유명한 마지막 문장처럼.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 새 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황주리 화가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