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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의 마켓 나우] 피지컬 AI, 한국에 유리한 게임의 시작

중앙일보

2026.01.12 07:14 2026.01.1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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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올해 CES 2026의 화두는 단연 피지컬 AI다. 삼성전자의 로봇 집사 ‘볼리’, 현대차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LG전자의 가사 로봇 ‘클로이드’가 전시장 곳곳을 누비고, 중국 유니트리의 킥복싱 로봇과 아마존의 자율주행차 ‘죽스’가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AI가 대규모 클라우드 서버라는 가상 세계를 벗어나, 우리 곁의 물리적인 실체로 빠르게 옮겨오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 기술 지형에도 거대한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지금까지 AI 반도체 경쟁의 중심은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로 상징되는 초고성능 연산이었다.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대형 칩과 이를 뒷받침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얼마나 잘 설계·공급하느냐가 승부처였다. 초거대 데이터센터 구축에는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됐고, 각국은 반도체 주도권을 둘러싸고 공급망을 블록화해 왔다.

피지컬 AI 시대의 조건은 다르다. 0.1초의 지연도 허용되지 않고, 전력 제약은 훨씬 엄격하다. 로봇이나 자율주행차가 위급한 상황에서 클라우드의 응답을 기다릴 여유는 없다. 판단은 현장에서 즉시 이뤄져야 한다.

이 때문에 즉각적 추론에 특화된 NPU(신경망처리장치)는 여전히 핵심이다. 다만 피지컬 AI용 NPU는 GPU처럼 범용 시장을 이루기보다는, 가전·로봇·자동차 등 응용 분야별로 세분화·특화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시각·언어·동작을 통합 처리하는 VLA(Vision-Language-Action) 특화 칩, 지연을 줄이는 지능형 센서, 환경에 따라 회로를 바꾸는 FPGA(프로그래머블 반도체)가 결합돼야 한다.

주목할 점은 이들 기술의 진입장벽이 GPU나 메모리 제조만큼 높지 않다는 사실이다. 작동 환경이 엄격히 통제된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현실의 거친 환경에서 반도체의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설계 능력보다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가 더 중요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열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열 소재,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력반도체(SiC·GaN), 인간의 감각을 뛰어넘는 초정밀·고기능 센서 등 다양한 소부장 분야에서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야만 피지컬 AI 시대의 승자가 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에 피지컬 AI는 최적의 전장이다. 가전과 자동차 등 강력한 전방 산업을 반도체 산업과 결합한다면 상당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 ‘K-반도체 전략’을 피지컬 AI라는 더 넓은 영토로 확장하려면 할 일이 많다. 단순한 칩 설계 지원을 넘어 대·중소기업이 유기적으로 협업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다양한 반도체를 설계·제작·검증할 테스트베드 구축이 필요하다. 변화의 해일이 닥치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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