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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인사이드]한국형 전략적 억제가 필요한 이유

중앙일보

2026.01.12 12:00 2026.01.1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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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제’란 일반적으로 감정이나 행동, 현상 등을 억누르고 제지하여 멈추게 하는 것을 뜻한다. 군사적으로 억제는 잠재적 적이 도발이나 공격을 감행하지 못하도록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이러한 억제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아군의 전투력과 대비 태세가 충분히 강력하다는 점이 적에게 명확히 인식돼야 한다. 즉, 적이 도발을 감행할 경우, 그 대가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거나 성공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4월 15일 미국 공군의 B-1B 폭격기와 한국 공군의 F-35A, F-16 전투기와 주한미국의 F-16 전투기 가 연합공중훈련을 벌이고 있다. 국방부

손자병법이 말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는 부전승(不戰勝)의 사상과, 로마 제국이 반란과 침략에 대해 가차 없는 보복을 통해 평화를 유지한 Pax Romana의 방식은 비록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에서 비롯되었지만, 모두 적의 도발을 사전에 차단하는 군사적 억제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모두, 적의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적의 공격이 감당할 수 없는 대가와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핵무기의 등장과 냉전 시대의 도래는 ‘억제’를 국제 안보 담론의 중심 개념으로 부상시켰다. 버나드 브로디, 토마스 셸링, 로버트 저비스, 앨버트 울스테터, 허만 칸, 글랜 스나이더 등 많은 핵 억제 전략 전문가들이 등장해 억제의 안정성과 신뢰성 등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억제는 전쟁을 예방하고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전략으로, 전면전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과 위험으로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매력을 갖는다. 이러한 영향 속에서 억제는 이론적 논의에 더해, 종합적인 전략 환경을 반영한 실천적 억제 전략의 차원에서 확장억제, 맞춤형 억제, 교차 영역 억제, 통합 억제 등 다양한 개념들이 발전하였다.

이러한 억제 전략의 다변화는 각국이 처한 지정학적 조건과 안보 환경에 따라 상이한 방식으로 구현됐으며, 구소련의 핵 위협에 마주했던 같은 나토 회원국도 각국의 지정학적 상황과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해 고유한 안보 전략을 수립했다. 노르웨이는 냉전기 구소련과 국경을 접한 최전방 국가로, 나토 창립회원국으로 나토가 제공하는 억제력의 수혜자였다. 노르웨이는 동시에 지정학·문화적 특성을 반영해 미국의 핵무기 배치와 외국군 주둔에 반대하는 대소련 보장 정책도 병행 추진했다. 반면, 같은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는 냉전기 구소련의 남진을 봉쇄하는 최전선 국가임을 인식하고 500 여기 내외의 미국 전술 핵무기를 배치하며 미국의 확장억제에 기반한전초기지형 억제 전략을 구사했다.

우리의 경우 1978년부터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 미국의‘핵우산 제공’이 처음 포함됐다. 이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핵 개발 의도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며 미국이 대응한 측면이 컸다. 그리고 20006년 북한의 첫 번째 핵 실험 이후 SCM 공동성명에 ‘확장억제’가 등장했다. 이후 지속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따라 확장억제 정책 위원회, 억제 전략 위원회, 한미의 맞춤형 억제 전략, 2023년의 핵 협의그룹(NCG)까지 주로 미국의 확장억제 실행력과 신뢰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대북한 핵 억제 전략은 발전했다.


2016년 북한의 두 차례 핵 실험으로 한반도 안보 환경은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이에 우리 정부는 자체 억제력 강화를 목표로 ‘한국형 3축 체계’를 공식 선언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징후 시 선제타격을 하는 킬 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 한국형 대량 응징보복 전략으로 구성된 3축 체계는 우리의 독자적 억제 전략이며 이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확장억제에 기반한 한미동맹의 억제 전략 내에서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 수준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계상 핵 비보유국으로서, 이 현실을 전제로 ‘한국형 전략적 억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K-Pop과 K-Culture가 세계적으로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것처럼 안보 분야에서도 K-핵 억제 전략 구축이 요구된다. 미국의 확장억제 능력에 더해 우리 재래식 전력(3축 체계)의 치명성과 정밀성을 강화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정보·경제·심리 등 국가 역량 전반을 총동원해, 상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고 공격 의지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북한이 핵 무력 없이도 체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해, 비핵화로 나아가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권을 초월하는 확고한 정치적 의지와 고도의 정교함을 갖춘 외교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미동맹의 견고한 기반 위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중국과의 대화, 일본과의 협력, 그리고 핵 추진 잠수함 건조를 통한 전략적 자율성 제고 역시 한국형 전략적 억제의 핵심 구성요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지난해 10월 3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밴더버그 공군기지에서 미니트맨 Ⅲ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발사하고 있다. 핵탄두가 아닌 모의탄두가 달린 미사일이다. 미국은 유사시 한국에 핵우산을 씌워주겠다는 확장억제 공약을 지키고 있다. 미 공군

‘한국형 전략적 억제’는 수동적으로 미국의 결정을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억제 전략의 기획과 운용의 주체가 되는 것이며, 억제 전략 설계와 이행의 공동 참여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울러 어느 한 부처가 단독으로 하기 힘든 국력의 제반 요소와 부처별 역량을 정치적 의지를 중심으로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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