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 명소로 알려진 동해 간절곶에는 높이 8m, 폭 1.5~2m 크기의 석조 기념비가 서 있다. 포르투갈 신트라시에 위치한 호카곶에 세워진 석조 기념비, 이른바 '카보다로카(Cabo da Roca)'를 본떠 만든 조형물이다. 하지만 이 기념비는 설치 이후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반쪽짜리 재현', '어정쩡한 복제품'이라는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원본 카보다로카의 본질적인 상징이 빠졌다는 지적 때문이다.
포르투갈 현지의 석조 기념비는 대항해 시대 인류의 도전 정신을 기리는 의미로, 석조물 상단에 방향을 알리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이는 포르투갈 사회의 역사적·종교적 배경을 상징하는 요소로 해석된다. 반면 간절곶에 세워진 기념비 꼭대기는 아무 장식도 없는 평평한 상태다. 이른바 '민머리 카보다로카'다. 방문객들이 "간절곶에 공장 굴뚝 하나가 세워져 있는것 같다"는 지적을 하는 이유다.
간절곶에 이 석조 기념비가 세워진 사연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울산 울주군과 포르투갈 신트라시가 우호 협력 관계를 맺으며 유라시아 대륙의 시작과 끝을 잇겠다는 상징적 의미로 추진됐다. 양 도시는 각자의 상징물을 상대 도시에 교차 설치하기로 했다. 신트라시는 아시아 동쪽 끝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간절곶의 상징성을 인정, 호카곶에 '간절곶'이라는 한글이 새겨진 부채꼴 모양의 표지석을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실제로 신트라시에 간절곶을 상징하는 조형물은 아직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1월 울주군은 포르투갈 호카곶의 원형 상징물을 그대로 도입해 간절곶에 십자가까지 포함한 석조 기념비 설치를 추진했다. 그러나 일부 종교계에서 "공공장소에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우는 것은 종교 편향"이라는 반발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논쟁이 확산되자 울주군은 결국 십자가를 제외한 석조물만 남기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념비 옆 안내판에 실린 '포르투갈 현지 카보다로카' 사진이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해당 사진에는 2024년 초까지 십자가가 제거된 모습의 석조 기념비가 담겨 있었다. 포르투갈 현지에는 분명 존재하는 십자가를 간절곶 석조 기념비와 맞추기 위해 사진을 임의로 보정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방문객들 사이에서 지적되자, 울주군은 간절곶 시설 정비 사업을 진행하며 그해 안내판 위치를 탑 아래로 옮기면서 사진도 현지 십자가가 달린 석조 기념비가 있는 카보다로카 모습으로 교체했다.
지난 12일 찾은 간절곶 현장에서 만난 방문객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매년 연초 가족과 함께 간절곶을 찾는다는 직장인 이진형(38)씨는 "포르투갈의 상징적인 기념비를 이렇게 임의로 변형해 세운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예전 원본 사진까지 손댄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방문객 신모(40)씨는 "해맞이를 하면서도 저 돌기둥이 뭔지 몰랐다. 무슨 공단 굴뚝을 형상화한 줄 알았다"며 "외국인 관광객이 이 사정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에 대해 울주군 관계자는 "석조 기념비에 십자가를 없앤 것은 당시 종교적 논란을 최소화하면서 국제 교류 취지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안다"며 "탑 아래 안내판 포르투갈 현지 사진 역시 십자가에 대한 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단순 정비 과정에서 교체가 이뤄졌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포르투갈 신트라시에 위치한 호카곶에는 카보다로카로 불리는 석조 기념비가 있다. 이 기념비에는 포르투갈 시인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의 시구인 '여기,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카보다로카 일원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럽의 명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