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성지’(휴대전화 할인·보조금 혜택이 높은 곳)로 알려진 한 대리점. 매장은 KT의 번호이동 위약금 면제를 받으려는 손님들로 붐볐다. 직원이 “예약자가 몰려 1시간 후에나 상담이 가능하다”고 안내하자 손님은 “오늘까지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리를 지켰다.
KT의 무단 소액 결제 사건으로 시행된 위약금 면제 기간 마지막 날인 13일, 통신사들은 이탈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막판 스퍼트를 올렸다. 지난해 SK텔레콤(SKT)과 KT의 연이은 해킹 피해 사태 이후 가입자를 뺏고 뺏기는 마케팅 전쟁이 격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달 31일부터 시작된 면제 기간 중 지난 12일까지 집계된 KT 해지 건수는 약 26만 7000명에 달한다.
앞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지난해 7월 폐지된 영향도 경쟁 과열을 부추겼다. 지원금 상한 규제가 사라지자 통신사들은 자금을 투입해 가입자 뺏기에 나섰다. 이날 출시가 200만원가량의 모델인 아이폰 17은 30만~40만원대로, 갤럭시 S25는 사실상 공짜로 개통할 수 있었다. 일부 유통점에서는 기기값을 제외하고도 현금을 얹어주는 ‘마이너스폰’까지 등장했다.
인기가 많은 모델은 품귀 현상도 일어났다. 플래그십 모델인 S25 울트라 모델을 찾는 손님에게 직원은 “울트라는 지난 주말부터 구할 수 없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곧 있으면 S26이 나오지 않냐”며 고민하는 고객에게는 “일단 유심만 바꾸고 나중에 기기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신규 기기 구매 없이 통신사만 바꾸는 건 평소에는 드문 케이스지만, 이번 사태로 크게 늘었다고 한다. 여기에 알뜰폰(MVNO) 업계까지 가세해 월 100원대 초저가 요금제까지 내놓으며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규제 당국인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시장 과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방미통위 관계자는 “타 통신사를 비방하는 문구를 사용하는 등 허위·과장 광고 위주로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통신사들이 잃어버린 고객 신뢰 회복보다는 시장 점유율 지키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민관합동조사단의 KT 조사 이후에도 실제 결제에 필요한 이름,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의 유출 경로는 밝혀지지 않아 소비자들의 불안이 남아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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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제 살 깎아 먹기’식 마케팅 전쟁의 여파는 통신사들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SKT는 보상안이 반영된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이 484억원으로 90.9% 감소했다. KT의 경우 번호이동 없이 남은 고객을 위한 4500억원(KT 추산) 규모의 보상안이 올 1분기 실적에 반영될 예정이다. 이찬영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에도 통신사들이 과도한 마케팅 경쟁으로 실적만 약화하고 점유율은 변동이 없었던 출혈 경쟁 사례가 있었다”며 “마케팅 경쟁 강도를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