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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과거사 쉬운 것부터 푼다…조세이 탄광 ‘DNA 감정’ 추진

중앙일보

2026.01.13 02:01 2026.01.13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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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3일 일본 나라현 회담장에서 공동언론발표를 마치고 악수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13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조세이(長生) 탄광에 수몰된 유해의 유전자(DNA) 감정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인도주의적 협력에 양국이 손을 맞잡은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일본 나라(奈良)현에서 열린 정상회담 직후 공동 언론 발표를 통해 “1942년 일본 우베시 조세이(長生) 탄광에서 183명의 한국인과 일본인이 수몰 사망한 사고가 있었고, 80여년이 지난 작년 8월에서야 유해가 처음으로 발굴된 바 있다”며 “양국은 유해의 신원 확인을 위한 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해안에서 1㎞ 떨어진 해저 갱도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다. 사망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36명이 강제 동원된 한국인 노동자였다. 당시 일본 정부가 “대부분 구조됐다”며 사건을 축소·은폐했으나 1991년 조선인 희생자 명부가 발견되면서 실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합의에 대해 “과거사 문제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어 낼 수 있어 참으로 뜻깊게 생각한다”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도 “DNA 감정 협력과 관련하여 양국 간의 조정이 진전되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이재명 정부 들어 과거사 문제를 두고 한·일 양국이 합의를 이룬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3일 일본 나라현 회담장에서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그간 이 대통령은 한·일 과거사 문제와 경제·안보 분야 미래 협력을 분리하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을 펼쳤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8·15 광복절 경축식에서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며 “일본과 미래지향적인 상생 협력의 길을 모색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달 21일 공개된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2023년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합의에 대해 “국가로서의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이번 회담 전까지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총리와 세 차례, 다카이치 현 총리와 한 차례 등 모두 네 번의 한·일 정상회담을 했지만 과거사 문제는 직접적으로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일 양국이 비교적 갈등 소지가 적은 조세이 탄광 문제를 논의한 건 향후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등 오래된 난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디딤돌 성격도 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민간 중심의 조세이 탄광 논의에 정부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한 차원 높은 협력의 틀이 마련됐다”며 “이러한 선례는 향후 한·일 관계의 어려운 과제를 풀어나가는 동력이자, 초석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3일 일본 나라현 회담장에서 소인수 회담을 하기 앞서 인사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두 정상은 13일 스캠(사기) 범죄를 비롯한 초국가 범죄에 대한 공동 대응도 강화키로 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경찰청 주도로 발족한 국제 공조 협의체에 일본이 참여하기로 했다”며 “양국 공조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합의문도 채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도 “국경을 초월한 조직적 사기는 양국 공통의 과제”라고 했다. 양 정상은 ▶출입국 간소화 ▶수학여행 장려 ▶기술 자격 상호 인정 확대 등 교류 활성화 방안도 논의했다. 이날 회담은 소인수 회담(20분)과 확대 회담(68분)을 포함해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복잡하고 어지러운 국제 질서 속에서 한·일 간 협력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국이) 한때 아픈 과거의 경험을 갖고 있긴 하지만, 한·일 국교 정상화가 된 지도 이제 환갑이 지났다”며 “다시 새로운 60년을 시작하게 됐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국교 정상화 60주년이었던 지난해에 일·한 관계의 강인함을 보여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올해도 이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일·한 관계를 더욱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기를 바란다”고 했다.



오현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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