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여권 전체로 번진 보완수사권 존치 논란에 대해 “당 의견을 수렴하라”고 정부에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검찰 개혁 및 보완수사관과 관련해 당에서 충분한 논의와 숙의가 이뤄지고, 정부는 그 의견을 수렴할 것을 지시했다”고 청와대 대변인실은 밝혔다. 국무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이 지난 12일 발표한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법 입법예고안에 대한 여권 내 불만이 커지자 이 대통령이 하루 만에 직접 진화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 서울공항 환담장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전날 발표한 입법예고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 대표는 “의원들 안에도 이견이 있고, 당원들 안에서도 일부 이견이 도출되고 있다”고 상황을 전달했고, 이 대통령은 “정부안을 만들 때의 고민도 있다”면서도 “세상에 완벽한 안은 없다. 당의 의견이 있으면 활발하게 토론해서 중지를 모아 수정할 게 있다면 수정하자”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이에 정 대표는 “당내 토론에서 의견이 모아지면 또 소통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전용기를 탑승하러 가는 장면을 찍은 영상에는 이 대통령이 정 대표에게 “검찰의 권한이 없어지는데…. 지금 단계에서는 상호 견제를 해야지”라고 말하는 음성이 담겼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도 일제히 법안 수정을 시사하는 입장을 내놨다. 이 대통령 지시 약 5시간 뒤인 오후 4시 20분 김 총리는 페이스북에 “보완수사권에 대해선 그동안 일관되게 폐지가 원칙임을 밝혀왔다. 입법예고 기간 동안 당과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이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수렴할 것”이란 글을 올렸다. 검찰개혁추진단 역시 오후 5시쯤 “제기된 지적과 우려를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 당과 지속적인 협의 및 의견 수렴을 통해 최종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가 입법예고안 발표 하루 만에 한 발 뒤로 물러선 건 여당 의원들과 강성 지지층의 반발이 그만큼 거셌기 때문이다. 이른 오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여당 의원들은 “보완수사권 유지 가능성을 법안 곳곳에 숨겨놨다. 주는 걸 전제로 만든 법안”(김용민) “수사 절차상 매뉴얼을 꼼꼼히 만들어서 수사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낼 줄 알았다”(김승원) 등 비판 의견을 잇따라 냈다. 김어준씨도 “제도적인 고민은 하지 않고 이걸 핑계로 권력을 되살리려고 한 것”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오후 민주당 의원 24명 등 범여권 의원들이 참석한 ‘바람직한 검찰개혁을 위한 긴급토론회’에선 비판과 우려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이재명 정부 검찰은 다르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정부에 따라 달라지는 검찰을 없애기 위해 개혁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때문에 수사를 받다 돌아가셨다. 검찰 권력을 유지·확대하는 체제가 계속되면 정권이 바뀐 다음 살아남을 분은 봉욱 민정수석뿐”이라고 주장했다. 강성 지지층들도 “이 대통령이 검찰 개혁에 실패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될 수 있다”는 글을 딴지일보 게시판에 올리는 등 정부안을 종일 비판했다.
서 교수 등 검찰개혁추진단 자문위원 6명은 정부안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14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문위원 직을 사퇴하기로 했다. 이들은 “추진단이 자문위를 배제하고 개혁을 바라는 국민 염원을 저버린 것으로 판단해 사퇴를 결정했다”고 했다.
여당과 지지층의 전방위 압박으로 정부가 한 발 물러나면서, 공소청·중수청 설치 법안의 논의 주도권은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정청래 대표는 이날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서 “법의 통과는 국회 몫이다. 얼마든지 수정·변경이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추미애 법사위원장도 검찰개혁 토론회에서 “보완수사권·보완수사요구권 어떤 명분으로도 수사권을 다시 검찰에 쥐여줘선 안된다는 걸 복기해야 한다”며 “정부안은 대통령 말씀처럼 토론 소재로 제공됐다. 빨리 소란에서 대안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15일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 중수청·공소청 설치법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방침이다.
정부안이 여당 반발에 휘청이는 모습은 지난해 9월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두고 당정 이견이 돌출될 때도 나타났다. 정부 측은 법무부 소속을, 여당은 행안부 산하를 각각 주장했다. 이후 당정 협의를 거쳐 중수청 소속은 행안부로 정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