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이란에 체류 중인 자국민들에게 “지금 당장 이란을 떠나라”며 긴급 출국을 권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 개입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배제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조치여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 국무부가 운영하는 ‘주이란 가상 대사관’은 12일(현지시간) 이란 전역을 대상으로 보안 경보를 발령하고, 이란에 있는 미국 시민들에게 즉각 출국할 것을 권고했다. 국무부는 공지에서 “미국 정부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는 탈출 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시위 현장을 피하고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며, 연락 수단을 확보하라”고 밝혔다. 아르메니아와 튀르키예 등 인접국으로의 육로 이동 가능성도 안내했다.
미국은 1979년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 이후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해 현재 현지 대사관이 없으며, 온라인 가상 대사관을 통해 자국민 공지를 해오고 있다. 주이란 스위스대사관을 통한 영사 서비스도 지난해 10월 중단됐다.
이번 경고는 이란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나왔다. 국무부는 “폭력 사태로 급변할 수 있는 보안 환경 속에서 미국인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권이 시위대를 탄압할 경우 군사적 대응을 포함한 강경 조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 언론들은 백악관이 핵 협상 재개 여부를 검토하는 동시에 군사 행동 승인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동맹국들도 움직이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프랑스는 테헤란 주재 대사관의 비필수 인력을 지난 10~11일 이틀에 걸쳐 철수시켰다. 프랑스 외무부는 “현지 상황에 맞춰 인력을 재편성한 것”이라며 “대사관은 정상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외교부는 13일 김진아 2차관 주재로 본부-공관 합동 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이란 내 시위 상황과 교민 안전 대책을 점검했다. 외교부는 유사시 교민 대피·철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관련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이란에는 우리 국민 70여 명이 체류 중이며, 주이란대사관은 전 교민을 대상으로 매일 안전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이란 전역에는 여행경보 3단계(철수 권고)가 발령된 상태다.
이란에서는 리알화 폭락과 장기 경제난을 배경으로 지난달 말부터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노르웨이 기반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는 시위 16일째인 12일까지 최소 648명이 숨졌다고 집계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사망자가 수천 명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