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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의 아는 그림] 황금 말, 붉은 말

중앙일보

2026.01.13 07:04 2026.01.1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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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근영 문화부 기자
유리 돔으로 햇빛이 은총처럼 쏟아진다. 그 아래 실물 크기 말 조각상이 황금빛으로 찬란하다. 그리스 신화 속 날개 달린 신마(神馬) 페가수스다. 말의 한쪽 면은 금박으로 뒤덮여 있고, 반대쪽은 해부대에 올린 듯 붉은 속살에 힘줄이 드러난 모습이다. 환상과 희망에서 깨어난 ‘현실 자각 타임’이랄까. 영종도의 복합리조트 파라다이스 시티 로비에 설치된 데미안 허스트(61)의 ‘골든 레전드’(사진)다.

1990년대 그는 포름알데히드를 채운 대형 수조에 동물 사체를 넣은 ‘자연사’ 시리즈로 관객에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상기시켰다. 또 인골에 다이아몬드를 가득 박아 예술적 가치를 넘어서는 물질적 가치를 물었다. 이런 전작에 비하면 금박 조각은 얌전한 편이다. 허스트는 2016년 미국 마이애미의 새 호텔에 금박 입힌 매머드 뼈 모양 대형 조각 ‘사라졌지만 잊히지 않은’, 금박에 둘러싸인 유니콘의 옆구리가 열려 피 묻은 내장이 드러나는 ‘황금 신화(The Golden Myth)’를 설치했다. 이어 2017년 파라다이스 시티에 ‘골든 레전드’를 세웠다.

신화와 과학, 환상과 실제, 미와 추 사이의 모순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이 페가수스 조각상은 카지노 호텔을 드나드는 손님들에게 ‘역설적 사랑’을 받고 있다. 한껏 높인 금박 좌대가 “금전운의 상징”이 되어 방문객들의 손을 타는 통에 호텔 측은 울타리를 세웠다. 엽기적으로 보일 수 있는 힘줄 쪽도 “복을 기원하는 붉은색”이라고 한다니, 죽음의 두려움도 이겨내는 긍정이다. 마침 ‘붉은 말의 해’라는 새해다.





권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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