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병오년에 태어나 60년 후 병오년에 도착했다. 다음 병오년은 2086년인데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어렸을 때 마을 어른들은 우리가 백말띠라고 알려줬는데 요즘 알고 보니 붉은 말이란다. 6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흰말이 붉은 말로 털갈이를 한 것일까.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여튼 남들이 환갑이라 부르는 나이에 다다랐고 또 새해가 시작되었으니 지난 세월을 한 번 돌아보고 남은 생을 설계해야 하지 않나, 이런 부담감이 은근히 드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돌아보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겠다고 계획을 짜는 건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60년 동안 몸소 겪었기에 하는 말이다. 그래도 말을 타고 육십갑자를 한 바퀴 돌아 여기에 무사히 도착했으니 말 이야기라도 꺼내야겠다.
살아 보니 억지로 되는 일 없어
새해엔 안나푸르나 험지 넘는
말들의 고요한 눈빛 닮았으면
아무래도 말띠다 보니 말이 친근하게 느껴졌는데 사실 어린 시절 나는 말은 고사하고 나귀도 본 적이 없다. 말이 사라져가는 시절이었다. 마구간엔 말 대신 소와 닭이 살았다. 예전에는 소와 말이 같은 공간에서 살았던 모양이다. 말은 그림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가끔 접할 수 있을 뿐이었다. 말을 처음 본 건 어디일까. 동물원은 너무 멀었고 아마 강릉 경포대에서였을 것이다. 말은 마차에 관광객들을 태우고 호수와 바닷가를 따각따각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본 말은 예상했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아름답지도 늠름하지도 않았다. 입에는 재갈을 물렸고 털은 더러웠으며 엉덩이 밑에는 배설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풍기는 냄새마저 지독했다. 실상은 말을 관리하는 주인이 문제이겠지만 어쨌든 실망이 컸다. 나름 말띠라는 자부심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말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말을 보고 나온 사람들을 본 적도 있었다. 어느 주말 4호선 열차를 타고 과천 근처를 지나갈 때였다. 열차가 경마장역(경마공원역)에 도착하자 한산했던 열차 안으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들어왔다. 객실은 금방 만원이 되었다. 모두 경마장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그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뭐라 형언하기 힘든 낯선 냄새를 맡았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어딘가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한결같이 똑같았다. 뭔가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도대체 경마장 안에서 말들이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그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열차에서 내리고 말았다.
내가 또다시 말을 만난 건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이란 영화 속에서였다.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지대인 눈 덮인 산에서 밀무역에 가담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밀무역에 말이 동원되었다.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 독한 술을 마시고 타이어를 등에 진 채 길도 없는 국경을 넘어가는 말들. 경비대에 발각되면 총알을 피해 눈 비탈을 굴러가야 하는 말들. 말을 끌고 가는 아이는 물론이고 내 눈에는 취한 말과 노새 역시 애처로웠다. 영화의 포스터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눈이 내리고 길이 끊어지면 오빠는 취한 말을 끌고 국경을 넘습니다.’ 영화를 본 뒤 나는 슬퍼서 취했고 내가 앉아 있는 방바닥이 따스해서 부끄러웠다.
서너 해 전에는 네팔의 안나푸르나로 가는 험한 산자락에서 여러 말과 나귀, 노새를 만났다. 눈 쌓인 국경은 아니지만 등에 인간의 짐을 지고 고갯길을 넘어가고 있었다. 마방(馬房)꾼을 태우고도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고 긴 출렁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자동차가 갈 수 없는 산속 마을에 생활용품을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저녁 무렵 고갯마루의 마방에 도착한 뒤에야 짐을 풀고 등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땀을 말리며 여물을 먹는 말들의 눈을 오래 바라보았다. 다음 생이란 게 있다면 나도 마방꾼이 되어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드는 밤이었다.
그래도 말띠여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말 머리를 돌리다’라는 우스꽝스러운 소설을 쓰고서 은근히 세상의 반응을 기다린 적도 있는데 역시나 허사였다. 꼭 그래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젠 새해가 되어도 억지로 담배를 끊거나 술을 자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신년운세를 보는 일도 그만두었다. 겨울밤 고독과 외로움의 차이를 따지느라 밤을 새울 필요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지난 60년 동안 억지로 되는 게 없음에도 매년 억지를 부렸다. 앞으로는 저 히말라야 고갯길을 넘어가는 말들의 고요한 눈을 조금이나마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오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