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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의 테아트룸 문디] 알베르 카뮈의 계엄령

중앙일보

2026.01.13 07:08 2026.01.1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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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극작가·연출가
계엄 재판 뉴스를 접하다 카뮈의 『계엄령』(사진)을 읽었다. 스페인의 카디스를 배경 삼아 페스트가 창궐하는 상황을 그린 희곡이다. 일종의 우화극으로, ‘페스트’를 의인화시켜 카디스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독재자로 묘사했다.

파리에서 ‘계엄령’이 초연되었던 해는 1948년. 비록 전쟁은 끝났지만 2차 대전을 일으켰던 히틀러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여기에 히틀러에 버금가는 스탈린 중심의 전체주의가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그래서 ‘계엄령’의 극적 장소가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라 스페인이라는 설정에 대한 갑론을박도 당시에는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카디스는 과거 스페인 내전 당시 우파였던 프랑코 반군이 수천 명을 숙청했던 장소다. 카뮈의 ‘계엄령’이 가리키는 화살은 정확하게 어느 진영인가.

어쩌면 이런 혼란이 카뮈의 의도 아니었을까. 우화의 범위는 넓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몰살하는 ‘페스트’를 독재자로 설정하는 상징적 처리를 통해, 구체적인 시공간이나 진영에 묶이지 않는다. 국가 권력의 모든 폭력성과 압제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알제리 청년으로 출발했던 카뮈는 역사의 권리가 약삭빠른 권력자들 편에 있지 않고, 고통받으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보통 사람에게 있음을 믿었다. “들장미와 하늘의 징조와 여름의 표정, 바다의 우렁찬 목소리와 고뇌의 순간 그리고 인간들의 분노”로 표현한 선과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 또 보통 사람의 용기가 ‘페스트’라는 불가항력의 권력을 이겨낸다고 믿었다.

참 길었던 현실 속 계엄 논란의 1막이 이제 정리되는 모양새다. 모든 진영의 정치가들이 겸허해지길 바란다. 계엄을 막은 것은 막말과 검은돈이 오고 가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다. 역사가 퇴행하지 않고 전진하길 바랐던 보통 사람들의 선한 용기였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김명화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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