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비자 가전쇼(CES 2026) 전시장에 마련된 로보락 부스는 몰려든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한쪽엔 가파른 계단, 반대쪽엔 미끄러운 내리막길이 설치된 무대 위로 세계 최초로 이륜 다리를 탑재한 로봇청소기 사로스 로버가 모습을 드러내면서다.
시연이 시작되자 현장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한 무대로 바뀌었다. 신형 로봇청소기가 발을 헛디디거나 경사면에서 미끄러지는 등 불안정한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됐기 때문이다. 시연이 끝나고 옆에 있던 한 네덜란드 관람객에게 “(퍼포먼스가) 아쉽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 어때요, 여기는 제품 판매 매장도 아니잖아요!” CES는 완성된 제품을 파는 시장이 아니라 혁신의 과정과 가능성을 공유하는 거대한 실험실 아니냐는 의미였다.
올해 CES 2026의 화두가 피지컬 AI였던 만큼 놀랄 만한 로봇들이 다수 등장했지만, 기술 완성도 면에선 투박하고 날것 그대로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관람객들 앞에서 춤을 추고 하트를 보내던 중국 하이센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애런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의 부스 풍경은 사뭇 달랐다. 화려하고 세련된 전시관은 오차 없는 무결점의 미술관 같았다. 한때 삼성의 혁신을 보여주는 듯했던 가정용 로봇 볼리는 자취를 감췄고, AI홈 비전을 강조한 메시지도 4개월 전 베를린국제가전박람회(IFA 2025)에서 보여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삼성의 로봇 전략을 묻는 질의에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은 “(사내) 제조 거점에서 역량 강화를 한 뒤에 기업·소비자 대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답했다. 실수하느니 완벽을 기해 다음을 기약하겠다는 경직된 완벽주의로 보였다.
시장의 판을 흔드는 퍼스트 무버로서의 야성도 희미해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번 CES에서 주력으로 내세운 RGB(적·녹·청) TV는 사실 중국 하이센스가 지난해 3월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시장의 문을 열었다. RGB TV는 액정표시장치(LCD)의 기존 백색 백라이트를 적·녹·청으로 분리 제어해 색 재현력과 밝기를 동시에 끌어올린 제품이다. 한국 기업은 이번에 하이센스가 만든 소자 크기 500㎛(마이크로미터)를 100㎛(마이크로미터) 이하로 줄인 것으로 만족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무게감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완벽한 정답만을 내놓으려 하는 문화는 오히려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저해할 수 있다. 실수 없는 결과물만 보여주려다 보니 3년 뒤, 5년 뒤의 미래는 상상하기 어려워졌다. 계단에서 미끄러질지언정 끊임없이 혁신을 시도하는 중국의 무모한 실행력이 언젠가 우리를 앞지르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다.